선물
11/20 이철규
정교수님 계절이 두번 바뀌고 겨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이 숨쉬기 힘든 세상으로 변하고 있네요.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모님과 교수님 모두 건강하신지요. 양삭의 수해 피해가 심했을텐데 잘 극복하셨는지요. 차마 묻기도 조심스럽군요.
여기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하다가 다시 날이 추워지면서 좀 증가 추세입니다.
상해는 구정이후로 가보지 못했어요.속히 옛날로 회복되면 좋겠지만 요즘 같아선 그것도 바라기 힘든 소망 처럼 보입니다. ^^
부디 건강하시고 형편이 좋아져서 속히 다시 뵐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11/23
이박사님, 수일전 소식받고 참 반가왔습니다. 무사하시군요? 짐작은 했었지만 그동안 상해에서 섬기시던 일도 잠시 멈쳐 서셨고요.
정말 계절이 몇번이나 바뀌어 그새 한바퀴 돌아 다시 겨울의 문턱입니다. 아침저녁 쌀쌀하여 새벽마다 저희 집 드럼통 난로는 진작 가동중이지만, 대낮에는 반팔옷을 입으면 딱 좋은 날씨입니다.
염려해주시는 은혜 가운데, 양삭의 저희들 비롯하여 하북에 가있는 아이들, 또 광고성 난닝 에 내려온 영신이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예외없이 모두 무사합니다. 확률상 쉽지 않은 일인데... 이곳은 공식적으로 코로나 졸업식을 아예 해버렸지만 도처의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뜨거운 한여름부터 저희 사는 산속집에 연결해 짓기 시작한 양삭의 “Dennis Restaurant”! 옛날 기억으론 북미 고속도로변에 늘 있던 아침밥을 많이 주던 그 식당, 그걸로 아이들이 장차 자립하면 어떨까해서 시작했는데 최근 작고 부족하나마 완공되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꾼도, volunteer도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머지않아, 지금은 부득이 천진에서 벌써 몇년째 투석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양양이를 이 식당의 주인으로 꼭 세우실 것 같은 예감에 시종 신명나는 기쁨의 땀을 흘리는 하루하루였습니다. 꼬마때부터 “난 밥하는 사람될꺼야” 노래불렀던 양양이...(밥하면서 맛난 것을 슬쩍슬쩍 집어먹고 싶어 그랬던 불순 동기도 없진 않았지만) 아직도 감옥에 갇힌 무기수같이 원치않는 고독한 병원생활의 연속입니다. 햇볕도 한동안 못 쬐어본 양양이! 지금으로서 양삭귀환이란, 꿈도 못꿀 일이긴 하지만, 나사로를 일으키신 우리 주님께, 우리 양양이를 돌아오게 해서 조그만 밥점 주인 만드시는 것이 어떤 하등의 난점이 있을까하는 믿음도 생겼고... 안 그럴거면 이곳을 떠난지 수년이나 된 양양이 사회(건강)보험료를 괜히 꼬박꼬박 내게 하셨을 까닭이 없었겠지요. 또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주님께는 양양이가 우리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사랑하는 생명이요, 주님의 자식이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역병만 곧 잠잠해지면 양삭인민병원 혈액투석센터에 병상 하나 확보해놓고, 우리 회사 고용계약서를 들고 천진고아원 영도자님을 다시 한번 찾아가 어려운 청을 넣을 작정입니다. 금년 열여덟이 된 양양이는 먼저 돌아온 동갑내기 영은이와 마음 통하는 가장 친밀한 형제요, 동반입니다. 형제의 도움도 기꺼이 즐기며, 의젓하게 돈벌어서 오토바이 타고 투석도 혼자 받고 돌아오는 주님의 자녀 양양이를 꿈에 그려봅니다.
자격도 없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더니, 기묘하게도 영은이, 즈이, 최근에는 대학시험까지 붙어 영신이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곧 천시와 리리는 수속중이고, 그리고 수년후에는 보보와 슈앙요가 돌아오게 될 지 모른다고 하니, 저희 내외에게 이보다 더 큰 은혜가 또 있을까하는 심정입니다. 다시 돌아온 세자녀, 지척에서 쳐다보면 볼 수록 주님의 손길이 신기하고, 지금은 멀리서 볼 수도 없는 다른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한층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주님의 심정도 그러시겠지요?
조만간 온 땅에 갱신과 회복의 계절이 내려지시면, 그때 가서 이박사님을 뵙고 두런두런 지난 어려웠던 이야기 나눌 또 한번의 즐거운 희망을 걸어 보겠습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근거리 안목에 아무리 끝이 없어 보여도 그 어떤 것도 피조세계의 일시현상有终일 뿐, 무종无终이란 오직 우리 주님의 유일独一无二하신 영역이니...
이 어려운 시간..., 그곳 식구들, 특별히 위험과 zero-distance에서 애쓰시는 두분 선생님 그리고 수많은 선생님들, 큰 폭풍 가운데에서도 안전한 항구에 늘 감춰 주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이런 때에” “경건”(εὐσέβεια 유세베이아, 유익한 떨림reverence?)의 유익이 일상속에서 체험됨으로서, 오히려 주님의 무릎앞에 또 한걸음, 다시 한걸음 친밀히 나아가는 새날들이 피차의 눈앞에 펼쳐지시기를 빕니다.
양삭에서, 정안덕올림.
11/23 이철규
李哲奎 cheolgyu lee:
좋은 소식 감사드립니다. 이 아침에 가슴이 훈훈해지네요. 저도 자녀들이 다시 모여 새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건설해가기를 마음모아 기도할게요.
저는 최근 덜컥 장로 피택이 되버렸습니다.
뭔가 고소해하는 아내의 반응도, 빼박이라고 좋아하는 어느 집사님도,
심지어 하나님께서 드디어 집사님을 꺾으셨다고 좋아하실 것 같다는 어느 선교사님도,
마치 버스 안에서 승객 모두에게 종이 번호표를 나눠주고는
"당첨되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다 부러워 하시네요." 하면서 한 통속으로 얼러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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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반항하는 아이에게 입히는, 몸을 옥조이게 하는 옷을 입은 이 기분은 뭘까요.
며칠 전 몇 개의 그림 언어로 선명하게 말씀하신 주께서 마치
'이젠 그만 밖으로 싸돌아 다니고 집안 일 좀 하지 그래?'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교회, 실은 그가 여전히 나의 신부이고 너의 어미 아니겠니?'
라고 말씀하시는 듯 해서 차마 거부의 몸짓을 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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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를 조각이 아닌 소조의 삶을 살고 싶다'고 아무생각 없이 던진 연초의 다짐이 덜컥 또 다른 올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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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허지?'라는 탄식에
'그냥 여지껏 하던대로'라는 내면의 속삭임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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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정말정말 짓궂으시네요.
그리고 징글징글 집요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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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깊은 내상을 입은 뒤,
방어기제처럼 휘뚜루마뚜루 다니던 수 년의 사랑방 손님 생활,
이제는 정리해야 할 듯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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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그래도 어떡허지~ 고민 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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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을 위한 기도회가 그 전에 일주간 진행되었어요. 별로 참석하고 싶진 않았지만 후보에 제 이름도 있고해서 고민하다 3일을 참석했어요. 그 기간에 좀 독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첫날 아침 기도가 마치고 멍때로 있는데 머리 속에 한 화면이 떠오르더군요.
그 장면을 약간 대화기법으로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바순을 보여주시면서
아들아 무엇을 보느냐?
바순을 보나이다.
바순이라는 악기를 아느냐?
모릅니다.
가장 오래된 목관 악기인 바순은 목관에서 중저음을 맡고 있단다. 다른 목관 악기의 저음을 조화롭게 하여 다른 악기와 합주할 때 보조 역할을 감당하며 다른 악기를 돋보이게 한단다.
낮은 음역은 어두운 음색으로 슬픔을 잘 표현하지만 특유의 비음 음색은 희극적인 상황을 잘 묘사한단다.
그렇지만 중음역에서는 멋진 서정적인 표현을 잘 해낸단다.
둘째날
둘째날 아들아 또 무엇을 보느냐
수술용 스칼펠을 보나이다.
잘 알겠지만 스칼펠은 수술을 위한 도구지
불필요한 조직을 제거할 때 쓴단다.
거룩을 위해 죄를 도려내는 도구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함부로 휘두르지 않아야 하며
한번 사용할 때는 확실하게 제대로 사용해야 한단다.
둘째 날 이어서 기도했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를 더 보여주세요.
아들아 또 무엇을 보느냐
텐트를 세우는 폴대를 보나이다.
텐트가 무너지더라도 폴대만 바로서면 공간이 생기고 사람이 안전하게 거주할 공간이 생긴단다.
하지만 폴대에는 등잔이나 여러가지 물건을을 걸어둘 못을 박기도 하고, 개구장이들이 폴대에 매달리기도 한단다.
아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지.
굳건히 잘 버티는게 필요하지
그 공간안에 사람들도, 하나님도 함께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험이었고 그날 저녁 산책하면서 다시 여쭸어요.
내일 새벽기도를 가면 이 셋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잘 설명해주세요.
다음 날 새벽기도회에서 민수기를 그동안 봤는데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첫째, 화목, 또는 섬김
둘째, 거룩
셋째, 성도를 축복함
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바순은 다른 사름을 위한 것
스칼펠은 너 자신을 위한 것
폴대는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이해 되었습니다.
장면을 보여주신 의미가 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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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읽으면서 기도하게 되네요.
광범위한 수해의 피해가 있었을텐데 무사하시다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데니스 레스토랑이 잘 완공되고 좋은 소문이 나서 아이들 자립의 근거가 되고 사회적인 역할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천진에서 투석받고 생활하는 양양이가 무사히 합류할 수 있기를, 식당의 좋은 동역 일군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영신이가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했다니 축하하고 감사하네요. 영은 즈이 영신이가 장차 공동체의 중추적인 역할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천시, 리리, 보보 슈앙요까지 돌아오면 그야말로 공동체 재건이군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영원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시는 두분께 하나님의 공급의 손길과 위로의 손길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철규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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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너무너무 분에 넘치는 선물입니다. 두손으로 받들어 마음에 품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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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Chung:
종이 한 장과 엉성한 글씨 몇자인대, 그런 것도 선물로 받아주시니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싶은데 달리 방도는 없고해서... 저는 죽을 때까지 도달못할 푯대를 세워보았습니다.
꼭 이루시옵소서!
Dr. Chung:
그리고... 평소 목관악기를 좋아해도, 바순이 그리 뜻있는 존재인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바순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