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유적 문제가 발생하면 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싸움에서 플라톤을 지향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을 지지한다.
명제적 선언을 수용하기보다는 귀납적 성찰의 결과를 더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신학에서도 그러하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이어서 하늘로부터의 지식과 계시일 때 신학 고유의 가치를 발휘한다.
그러나 그 신학을 마주하며 탐구하는 주체, 그것을 탐구해서 공유하고 전파하려는 대상은 인간이다.
따라서 신학적 자세에서도 하늘로부터의 신학(Theology from above) 보다는 땅으로부터의 신학(Theology from below)을 선호한다.
교회사 분야에서도 그러하다.
흔히들 역사는 history이지만 His story라는 word play로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어서 신적 관점에서만 역사를 해석해야 하고 인간적 또는 인본적 해석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수긍과 공감이 가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을 힘주어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인문학적 게으름과 신학적 나르시시즘이 발견될 때가 많다.
안타깝게도 신학교 재학 중에 교회사를 그런 입장을 가진 이로부터 접했다.
종교개혁 당시 농민 전쟁에 관한 루터의 주장을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도구로 사용할 정도로 억지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녹비에 쓰여진 가로 왈(曰)을 읽어내는 수준을 넘어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지록위마 指鹿爲馬) 경지였다. 참기 힘든 역겨움이었다.
그 뒤로 교회사라는 학문 자체가 싫어졌다. 교회사 학자들은 어쩌면 과거에 갇혀있는 자들이거나, 공중에 떠 있는 자들로 여겨졌다.
하나님은 과거나 미래에 갇힌 포로가 아니시며, 거룩한 성산이나 수도원에 칩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늘 여기, 시끄럽고 번잡한 장터 같은 우리의 일상 속에 우리와 함께하신다.
신학도 '현재', '오늘' 그리고 '여기' , '일상'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겨자씨가 흙에 묻혀야 발아되고, 누룩이 밀가루 속에 파묻혀야 발효되듯이 신학 또한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
최종원(Jongwon Choi) 교수의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를 펴는 순간 찌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냉수를 마신 기분이 든다.
경건한 신학자들은 어찌 감히 인문학자가 교회사를 쓸 수 있냐고 수염을 쓰다듬겠지만 그의 글에는 인문학적 통찰과 접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내려는 지고한 탐구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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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경건한 신학자들은 서둘러 목적지에 이르려 하므로, 아니 어쩌면 마치 스스로 목적지를 너무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기에 그들은 마치 단체 여행 가이드처럼 조급하게 행동한다.
여행의 과정을 즐기며, 계곡과 골짜기 나무 한 그루, 새 소리와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맘껏 즐기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여 깃발만 보고 쫓아오라고 다그친다. 목적지에 일단 떨궈 버리고 책임을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하려는 자들로 보인다.
물론 여행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서둘러야 하겠지만 여행은 일평생 계속되고 또 가다가 중지해도 간만큼 이익이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경구처럼 여유 있는 접근으로 얻을 게 더 많다.
왜냐하면 그러한 탐구의 결과로 얻어진 한 줌의 지혜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내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얻어진 지혜는 마치 오래오래 불을 지피게 해주는 송진 가득한 관솔에 비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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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원 교수의 본 저서는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의 시작점에서 시작하여 급속한 확산 과정, 대안적 세계관으로 가치관의 승리를 쟁취해가는 과정, 라틴교회와 동방 교회에 대한 자세한 서술, 이단 운동과 수도원 운동을 넘어 기독교가 공인되고 제국교회의 위치를 차지하는 과정, 그리고 교리가 확립되고 분열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서술해간다.
일정, 기후, 환경 등 불가항력적 요소를 제외하면 여행의 성패는 사실 가이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 역사를 여행하기에 본서 저자는 숙련된 가이드일 뿐 아니라 거기에 충분히 독자를 배려해주는 세련된 안내자 이다.
'역사책은 하나의 통일된 지식과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인식과 의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서술대로 본서를 읽음으로 인해 지평과 안목이 넓어지는 충분한 효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관점으로 역사를 대하는 것이 역사 속에서 신적 의미를 파악하는 올바른 접근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상의 신국이라 믿어온 로마제국이 이교도에 의해 철저히 멸망되는 것을 바라보며 진정한 하나님의 도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아우구스티누스를 저자가 마지막 장에 배치한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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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땅에서 제국을 건설하려는 듯한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더 낮은 자세, 포용의 자세를 회복해야 하며, 성경 텍스트와 함께 이 땅의 컨텍스트도 충분히 고민 해야 한다는 공감가는 주장을 에필로그에 담아두었다.
쉽고 자상한 설명이 마치 초대교회사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는 느낌이 든다. 내친김에 이 책의 만화 버전이 나오면 좋겠다 싶다.
책상 한쪽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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