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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주일 오후, 구라(救癩)봉사회에 임한 영 >

by kainos 2022. 7. 21.

- 틀니를 알지 못하는 세대

코로나 상황으로 3년째 한센인 틀니 여름 진료봉사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그간 사용기간이 지난 수많은 치과재료 점검도 시급했고, 50년간 한번도 쉬지않고 이어진 진료의 노하우가 단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본과 1학년으로 따라가 기웃거리던 어린 친구들이 벌써 4학년이 되었으니 오호라 틀니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마치 소총 사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제대하는 불상사라니 '어이할꼬'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이다.
 
선배들이 결정하기를
아쉬운대로 대학병원 실습실을 빌려 잃어버린 율법책을 찾아 낭독하며 제사를 드리는 맘으로 예행 연습을 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이틀에 걸쳐 낮 사분의 일은 기구 점검, 낮 사분의 일은 기구 세팅, 다른 날 사분의 일은 가상 진료, 사분의 일은 회개와 평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틀 중 끝시간에 점검과 권면의 임무를 부탁 받고 갔습니다.
 
 
 
- 영이 임하여
 
제사에서 성물의 사용법을 말로만 할 수 없듯이 기구와 재료의 사용법을 말로만 설명하려니 난감했습니다.
자진해 나선 학생 한 명을 제물로 바치기로 작정하고 날카로운 도구와 뜨거운 재료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아뢴 뒤
그 학생의 얼굴과 입안에 각종 표시를 하며 치료 과정을 설명하는 중에
몸이 살짝 부르르 떨리고 그 오래전 레지던트 시절과 외래교수 시절에 임하였던 설명의 영이 다시 임하여,
거의 20여년을 사용하지 않던 해부학 용어가 방언처럼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면서 바람같이 강한 '설명과 잔소리의 영'이 교실 안에 충만였습니다.
이름하여 '30분 만에 훑어보는 상하악 틀니 제작 과정'
 
임마누엘 지혜의 영이 임한 일부 학생들 눈과 머리위에 불의 혀와 같은 영이 임하여 눈이 초롱거리며 머리끝이 바람결에 흩날리더니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였습니다.
한 제자가 증언하여 말하기를
'학교에서 틀니 치료 과정을 2학년 2학기, 3학년 1학기의 1년에 걸쳐 배우다 보니 틀니는 일년이 걸리는 치료인 줄 알았나이다.
그렇게 틀니를 오랜기간 치료하면 수명 짧은 환자는 어쩌나 생각했나이다.
이제 선생님의 30분 훑어보기를 듣고보니 치료의 전 과정이 마치 한장의 파노라마처럼 이해가 가나이다.' 하더군요.
 
 
- 권면의 말
 
바람같은 영이 지나간후 평가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의 키워드인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권면하고자 하였으나 그들의 언어가 아닌지라  받을만한 이가 없을지 몰라 그들이 언어인 치과임상윤리라는 난곳 방언으로 풀어 설명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처럼 학생때 부터 구라봉사회에 활동한 성골이나 진골이 못됩니다. 뒤늦게 전공의 사회적 책임을 실감하여 50대에 뛰어든 4두품이나 5두품이 될까 말까 합니다. 학생시절 부터 이런 생각을 하시고 한센인 의치봉사회인 구라봉사회에 들어오신 여러분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이 귀한 봉사의 정신을 전문가의 역량인 기술역량, 윤리역량, 관계역량과 잘 빚어 내시길 바랍니다.'
라는 위로와 권면의 말씀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그 영이 훑고 지나간 자리가 얼마나 고단했던지 돌아오는 길이 몹시 졸린 하루였습니다.
 
(feat: 창세기,느헤미야,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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