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칼 사건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뉴욕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앨런 소칼(Alan David Sokal)은 평소 포스트모더니즘이 학문적 엄정성을 읽고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편향되었다고 생각하던 중 이러한 편견에 도전하고 깨트리려는 노력으로 다소 황당한 일을 벌입니다.
논문을 그럴듯하게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에 잘 짜맞추기만 하면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학술지에 개제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1994년 《Social Text》 라는 인문학 저널에 가짜 논문을 투고합니다.
그는 양자 중력이 언어, 사회적 구성이라는 것을 제안한〈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를 《소셜 텍스트》지에 투고합니다.
당시 《소셜 텍스트》 지는 동료 평가를 하지 않았으며, 물리학자에 의한 전문가 평가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논문은 1996년 《소셜 텍스트》의 봄/여름 ‘과학전쟁’ 특별호에 개제됩니다.
그러나 소칼은 이 논문의 출판일인 1996년 5월에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 <문화연구에 대한 어느 물리학자의 실험> (A Physicist Experiments with Cultural Studies)을 게재해 이 사실을 폭로합니다.
이후, 이 사건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프랑스 철학계를 발칵 뒤집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연구윤리와 동료평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칼은 전문가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뻔한 농담을 주석에 붙였는데도 이 논문은 아무런 검증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진영 논리가 진리 탐구 보다 우선한다는 것 입니다. 달리 말해 몇마디 키워드로 그럴듯 하게 입맛에 맞춰 포장되면 그것의 진위 여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단지 같은 편 이기에 옳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분야에서도 그러할진데 서로 다른 교리 때문에 목숨걸고 싸운 역사가 있는 신학 분야는 오죽하겠습니까?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등
하나 하나 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저항과 분열의 유전자는 지금도 우리 속에서 작동하여 몇마디 키워드로 서로를 평가하고 진영을 나누고 진리과 진실을 무디게 하고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불과 몇년 전 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자행될 때 출석 교회에서 '종교개혁 기념 강좌'라는 연례 행사에서 교회사를 전공한 어느 신학 교수가 루터의 농민 전쟁에 대한 평가를 빙자해 교과서 국정화, 이승만 찬양의 궤변을 늘어 놓은 적이 있었고 그 일이 발단이 되어 그 교회를 잠시 벗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광복절을 맞이해서 여기저기서 얄팍한 성경 해석을 기반으로 국제 정세와 근현대사에 대한 조잡한 관점을 강단에서 설파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미명아래 신학적 소칼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신학자, 목회자들이 부단히 동료검증을 해야하고 일반 성도들 또한 집단 지성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 때 입니다.
경험도 폭력이 되는 현실, 어설픈 경험을 의지한 녹슨 지식이 아닌 참된 호크마를 찾아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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