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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구라(救癩)봉사회/안동 성좌원

by kainos 2020. 5. 2.

지난 월요일 안동에 있는 한센인 마을, 성좌원 진료를 다녀왔습니다.
2011부터 다녔으니 9년 째 인데 다녀본 시설 중 제일 나은 곳 같더군요.

구라(救癩) 봉사회 선배님들께서 어떤 사정들이 계셨는지 주중에 참여하시기로 하고 첫날 진료에 오지 않으셔서 어쩌다 보니 내가 제일 윗 기수가 되버렸네요.

전통적으로 구라 봉사회는 제일 노땅이 일번 진료대를 사용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넘버 쓰리 였는데 하나도 반갑지 않았고 아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었어요.

이곳 한센 환자들도 이젠 거의 대부분 80대 이상 고령 환자들입니다.
귀가 어두워 진료 과정마다 소리소리를 질러야 하고 많은 어르신들이 심신이 쇠약해서 휠체어에 앉힌 채로 허리를 구부려 진료를 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진땀이 났죠.

옆 자리 어떤 할머니께서 뭐라뭐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귀를 기울여 보니 진료 보조하는 학생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할머니 자신은 예수를 믿고 일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하시는 것 같더군요.
왜 그렇지 않으셨겠어요, 한센인의 굴레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오기까지 예수의 십자가 이외에 어디에서 그 위로를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옆 자리 진료의사인 동기 한선생에게도 예수 믿냐고 하십니다. 한선생이 자신은 천주교인이고 나를 가리키면서 이 선생이 예수 믿는 사람인데 목사급 예수신자라고 하니 할머니께서 어떻게 알아들으셨는지 목사냐고 반색을 합니다.
손사래를 치고 할머니의 예수 타령에 아멘과 할렐루야로 화답해드리자 무척 흡족해 하십니다.

더위에 실내건 야외이건 땀을 보태는 학생들의 손길이 참 가상합니다. 일주일을 교대 근무로 재능을 쏟아 부으시는 기공소장님들의 손길도 참 귀합니다.

새벽에 나선 발걸음이 오후 다섯시가 되니 지칩니다.
그래도 빨리 서둘러 올라가는게 다음날 진료에 조금이나마 나을 것 같아 후배들과 나눔도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 서둘렀지요.

하루 종일 내 옆에서 수고한 학생에게 치과임상윤리 책 한권 사인해서 선물하고 회원들에게 함께 보라고 책 세 권을 기증하면서
이렇게 나마 미안함을 달래봅니다.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오늘 아침 허리를 또 삐끗해 아픈 허리를 붙잡고 끙끙거렸습니다.
덕분에 이제 겨우 시작한 장애인 치과 자문교수 활동은 내일 못간다고 하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내일은 내 일이 아니죠.

굿나잇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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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로 위로 삼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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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막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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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꾸불뿌불 언덕 위로 올라가나요?
- 그래요, 끝날 때까지

하룻길은 온종일이 걸릴까요?
- 아침부터 밤까지 걸리지요, 친구여
.
.

하지만 밤에는 어디서 쉬나요?
- 어둠이 내리면 쉴 집이 있어요

어두워 그 집이 안 보이지 않을까요?
- 당신이 못 볼리가 없지요
.
.

밤에는 다른 길손들을 만나게 될까요?
- 앞서간 사람들을요

다가가 문을 두드리나요 멀리서부터 사람을 부르나요
- 당신을 그 문 앞에 세워 두진 않을 거예요
.
.

먼 길에 지쳐 약해진 이몸이 편히 쉴 수 있을까요?
- 당신이 애쓴 만큼이지요

그곳에는 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잠자리가 있을까요?
- 그래요, 찾아오는 모두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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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로제티>

(합창, 그리스도교 신앙시 100선, 최애리 엮어 옮김, 버드내.)

#구라봉사회

 

2019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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