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어느 선교사님을 치료해드렸습니다.
10여 년 전에 해드린 부분틀니는 지지해주던 치아들이 다 무너져 더이상 쓸 수 없는 상태인지라.
임플란트를 심고 틀니를 고쳐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곱 개의 치아를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심은 뒤 틀니를 수리해드려야 하는 두어 시간의 긴 과정이었죠.
발치와 수술을 마치고 잠시 지혈되기 기다리면서 환자 입에 거즈를 물리고 누워 쉬시게 하고
저는 틀니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통상 이런 상황에는 저는 환자에게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드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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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 가슴에 어떤 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흉부 어디론가 들리는 듯한 소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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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딸이니, 잘 좀 치료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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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 집중하던 순간에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치료대에 누워계신 선교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딸이니 잘 좀 치료해달라고 하시는 마음이 드네요."
그러자 선교사님은 깊은 탄식같은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양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자책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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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몇년 전과 최근에 자녀를 순서대로 잃으시고 고통스런 영적 싸움 중이신지라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계셨습니다.
그분에게 이런 말씀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자녀를 잃고 자신의 몸을 위한 틀니치료가 무슨 힘이 될지 모르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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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인의 가슴에 예리한 칼을 대시고 폐와 심장같은 자녀를 도려내신 하나님.
애끓는 고통이 치아의 무너짐으로 드러난 이 분에게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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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씀.
감히 천박한 우리 입술로 떠들고 다닐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그 사랑의 깊음은 깊고 푸른 바닷 속 같아서
그 심연으로 끌고가실 손길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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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시린 손 끝을 감히 잡을 자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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