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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37의 질문, "형제들아, 어이할꼬?"와 38절의 답변 "회개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라, 그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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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어떻게 하면 새 aeon의 멤버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는 베드로가 회개와 세례를 언급하며 답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두 에온의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
질문에는 두 개의 형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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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What must I do to come to faith?" 이다. 이는 내 쪽에서 뭔가를 협조해야 할 일을 묻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내쪽에서 뭔가 일어나야 할 일을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을 세례와 같은 기독교적 이벤트에 노출시켜야 할 일이다. 이것은 "무었을"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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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How do I move from faith to action?'의 질문이다. 즉 어떻게 하면 내 기독교성을 견고하게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모든 차원에서 내 존재의 전적인 재구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나의 내면을 다스리시는 분이됨이다. 내 존재의 오리엔테이션이 완전히 변형되고 나는 다른 역사, 다른 에온의 멤버가 됨을 의미한다. 이는 "어떻게"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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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공존한다. "육체 속에" 살고 있지만 더이상 "육의 법칙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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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사용한 용어 "simul justus et peccator"(at once righteous and sinful)에 잘 반영되어있다.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희망을 담아서 "pecctor in re, justus in spe"(sinful in fact, righteous in hope)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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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는 필연적으로 옛 aeon과 새 aeon 사이의 긴장의 필드에 존재한다.
기독교 윤리의 종말론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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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는 불가능한 가능성이다.(Chtristian Ethics is an impossible pos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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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관점은 산상수훈에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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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는 다가올 세상의 파괴적인 불 아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 aeon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고, 우리는 여기서 삶의 방식 (modus vivendi, mode of living, way of life)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는 세가지 신비한 모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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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종말론적 신비이다. - 두 에온 사이에서 이 긴장은 해소되지 않는다. 긴장은 사실상의 타협인 힘의 합력 계산처럼 제거되지 않는다. 이런 류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해법이란 타협점이라 해도 시간이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 즉, 영원히 지속되는 타당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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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기독론적 신비이다. - 그리스도 안에는 참 인간이고 참 하나님이 동시에 존재하는 긴장이 있다. 인간은 이 공식을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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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성례적 신비이다. - 성례에는 표징과 실제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고 사랑의 징표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윤리의 목표는 긴장의 극복이 아니라 타협점을 제시하여 긴장 속에 있는 두 에온 속에서 정의를 시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적 윤리의 주제는 "walking between two worlds" 이다. 따라서 "도보 여행자의 신학"(theologia viatorum, wayfarers theolog) 이어야 한다.
그것은 "아직"의 법 아래 있지만 "내가 속히 오리라"의 평안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It lives under the law of the "not yet" but within the peace of the "I am coming soon"(Rev. 22:20).
신학적 윤리란 종말론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Theological ethics is eschatological or it is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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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logical Ethcis volume 1: Foundations, Helmut Theilicke, Fortress press, 2007, Mineapolis.
4장 The Place of Evangelilcal Ethcis between the Two Ae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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