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계시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인자(Son of Man)라고 칭하심으로 자신을 이해시키셨다.
인자라는 단어는 다니엘서 7장에서 취한 표현이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단 7:13-14)
이 표현은 분명 세상을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주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즉, 복음 1세대의 성도들 입장에서는 스스로 인자라고 칭하시는 분의 모습은 다니엘서의 심판주의 모습과 도저히 연관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평범한 순회 전도자, 패배자들의 동반자, 말씀은 왕처럼 하시지만 삶은 노예같으신 분을 보고 많은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인자의 역설이 있다. 이 역설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이기신 분'이라고 표현하는 계시록 5장의 표현과 일맥 상통한다. 즉 처참한 죽음이 이김이라는 이김의 역설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복음 1세대는 사라지고 계시록이 기록되는 2.3세대가 처한 상황은 더 처참해졌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스스로 왕이며 신이라 칭하면서 자신을 숭배하라고 협박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핍박을 가하는 상황에 처한 그들에게 계시록 1장에 묘사된 심판주 예수님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그들에게는 복음 1세대의 인자의 모습이 아니라 지하 감옥의 탈출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이 필요했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 소망이 상실된 시대에 인자의 영광이 필요한 시대였다.
계시록 1장에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판타지 소설 같은 모습이지만, 복음 2.3세대의 일곱 교회를 방문하시고 위로하신다는 말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떤 인자의 모습이 필요한가?
계시록의 강력한 심판주가 필요할 만큼 핍박과 환란가운데 있는가?
아니면 지치고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 함께 뒹구시면서 위로해주시고 감싸주신 복음 1세대의 인자의 모습이 필요한가?
기독교의 교세가 커지고 첨탑이 높아질 수록 인자는 역설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 같다.
인자의 강림을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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