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인 1990년 , 처음 찬양대원이 되었을 때 베이스 파트의 낮은 음자리표를 보면서 가사를 따라가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국방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중이었는데 마침 국군의장대 성악사병이 치료받으러 왔습니다.
주로 애국가 등의 행사 음악을 연주하던 이 사병을 붙잡고 찬양대 송영곡 악보를 주면서 다음 주 까지 녹음해 오면 잘 치료해주겠다고 협박과 꼬드김으로 얻은 테이프를 매일 듣고 연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베이스 악보를 보는게 좀 익숙해지고 나니 베이스 파트는 '솔'과 '도'만 적절히 내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런 저런 찬양을 어줍잖게 따라 부를 수준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너무 컸습니다. 4성부가 한 곡조를 부르는 호모포니의 부분은 그저 자신 있게 따라 불렀는데 각 파트가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폴리포니의 부분은 정말 어디에서 나가야 할지 몰라 주저하기도 하고 허겁지겁 튀어나오다가 악보에 없는'곡중 솔로'를 선보이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5년 겨울, 태국접경 카렌 난민촌에 진료갔을 때 였습니다. 그 난민촌에는 차마 시설이라 말 할수 없는 열악한 신학교가 있었고 우리 팀은 위로차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를 환영해주기 위해 강단에 세우고 10대 중반의 앳된 남녀 신학생 100여명이 무반주로 악보없이 암기하며 완벽하게 4성부로 할렐루야를 불러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우렁찬 노래 앞에선 우리는 마치 엄청난 폭포수 앞에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 계시록 1:15에 예수님의 음성을 왜 많은 물소리로 묘사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으니까요.
온몸에 전해졌던 전율과 감동... 할렐루야를 부를 땐 항상 그때를 생각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팀파니와 트럼펫, 그리고 여러 관현악 연주와 함께한 할렐루야는 그때를 더 기억나게 합니다.
왜 할렐루야가 메시아의 피날레 아니고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피날레 곡인지에 대해 아쉽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보니까 4장에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신구약 교회를 대표하는 24장로가 머리의 관을 벗어드리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그리고 5장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시자 24장로와 네 생물이 자신의 보혈로 백성을 구원하신 어린 양께 인봉을 떼기 합당하심을, 그리고 둘러싼 수 많은 천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우주 공간의 모든 피조물이 능력과 부 지혜 힘과 존귀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과 어린 양께 돌리고 이어서 수 많은 천사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이것이 천상에서 울리는 우리의 영원한 찬송의 모델이 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계시록은 묵시문학입니다. 묵시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초월성인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가 미래가 만나고 여기와 그곳이 연결되어있다는 것 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지금 여기에서(here & now) 벌어지는 일은 그 곳 천상에서 그때(there & then) 일어나는 일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에서 구현된 승리는 현재 우리의 삶에 힘이 되고 나아가 팍팍한 현재를 영원의 관점에서 살아가도록 힘을 얻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찬양대에 서면 이 장면을 연상합니다.
천상에서 승리한 공동체가 고백하며 부르는 찬송과 아멘~,
그것은 지상의 교회 공동체의 목표입니다.
동시에 현재의 교회 공동체는 미래의 현존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바라보며 찬양할 때는 온 몸에 전율이 울립니다.
그리고 오늘을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영원을 향해 오늘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 마음으로 살게됩니다.
그래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 찬양이 피날레인 것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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