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강의하던 내용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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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삶과 신앙의 일치, 비즈니스 미션, 일터 신앙, 요즘은 흔한 말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 이런 용어들을 들어보기도 전에도 저에겐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터에서 보내는 주중 엿새의 삶이 주일의 신앙과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죠. 이런 질문에 답을 찾고자 의료윤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연장선 상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일과 신앙이 하나된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하나로 섞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같습니다. 물과 기름을 섞는 게 과거에는 비누같은 계면활성제를 이용해서 표면장력을 낮춰 섞을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물과 기름의 분자를 잘게 나눠 서로 섞이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신앙의 정신으로 살아내는 것, 일과 신앙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기능하는 신앙
우리의 일터 혹은 일상이란 어떤 곳일까요? 신앙인의 측면에서 삶의 현장은 마치 전투지와 비슷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전투원의 덕목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런 덕목을 갖추었다면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투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내 속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는 전투의 격전지가 되버립니다.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적군의 포로가 될 수도 있고 나아가 적군과 동맹을 맺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상은 사실 생존하고 견디는 것 자체도 힘듭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여러 종류의 압력을 받기 때문이죠. 감명 깊게 읽은 『산둥수용소』(새물결플러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인 랭던 길키라는 저자가 대학을 마치고 중국에서 영어교사로 봉사하다가 수용소에 갇혀 지낸 경험담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책의 부제는 ‘압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The story of Men and Women under pressure)입니다. 압력이 없을 때는 멋드러진 모습으로 이땅에서 마치 천국을 이룰 것 같지만 생존의 압력을 받으면 구겨지고 부서지고 오그라드는 등 여러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을 저자는 적나라하게 기록했습니다.
삶과 신앙의 일치(Integration between Faith & Work)라는 용어는 이전에는 신학의 작은 주제 였지만 이제는 보편화되어 교회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삶과 신앙의 일치‘라고 할 때 integration(일치, 유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원래 치과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치과의사들은 이 단어를 들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긴장합니다. 이제 TV 광고에서도 듣게되는 임플란트의 정식 명칭은 '골유착성 임플란트(Osseo-integrated implant)' 입니다. 티타늄이라는 소재의 임플란트가 뼈와 하나되어 붙어있다는 의미이죠. 금속이 뼛 속에서 염증같은 이물반응을 보이지 않고 뼈 세포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무척 신기한 일입니다.
임플란트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1952년 스웨덴의 해부학자인 브레느맠이라는 분이 토끼 정강이뼈에 금속 원통을 심어놓고 혈류를 관찰하는 실험을 합니다. 실험이 끝난 뒤 티타늄 금속 원통이 잘 제거되지 않자 이를 이상히 여겨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보았더니 뼈세포가 티타늄에 엉겨 붙어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를 치과분야에 적용한 것이 임플란트의 시작입니다.
임플란트는 빠진 치아를 대신 합니다. 치아는 평상시 음식을 씹을 때 대략 60kg/㎠의 압력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인 여성이 뾰족한 구두굽으로 밟는 것과 비슷한 엄청난 압력입니다. 이 뿐 아니라 이를 꽉 깨물거나, 이를 가는 등의 다양한 압력에도 견뎌냅니다. 이러한 조건을 잘 수행해야 성공한 임플란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신앙과 삶의 영역에 적용해 봅시다. 주일날 교회의 각종 봉사 자리에서 활동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신앙인이 있습니다. 그가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일터에서 일상의 압력도 잘 견뎌낸다면 신앙과 삶이 잘 결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력에 흔들리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면 신앙과 삶의 일치 즉, integration에 실패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신앙은 주일날 교회 뿐 아니라 주중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도 기능하고 작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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