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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과 종말론

니글의 이파리

by kainos 2024. 6. 3.
일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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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신앙의 원리를
삶으로 구현해 내고픈 소망을 품은지
십년이 넘게 흘렀지만
맘에 품은 그림은 흐릿해 가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왜'에 대한 답은 손에 쥔 듯한데
'어떻게'와 '무엇을'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들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때로는 소소한 상징적 제스처로
내 의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거나
때로는 이 시대를 풍미하는 이슈들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여
상대적인 도덕적 우월감을 혼자 맛보는
정도로 자족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들고...
현실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에
때론 먼 하늘을 멍하니 보던 차에
팀켈러의 [일과 영성](IVP)을 읽다가
서문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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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목사는 영국 작가 톨킨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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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던 톨킨은
수천 년의 역사를 정리하며 가상의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작업을 하다가 부차적 줄거리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하나하나 원하는 결말을 얻어 나가는 것은 난망한 일로 보여
낙심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2차대전이 시작되어 생명을 부지하고
이 집필을 완성할지 장담할 수 없는
'오금이 저리고 막막한' 상황에서
어느날 창밖에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이는 곧 넘어질 자신의 '내면의 나무'란 생각이 들어
다음날 '니글의 이파리'라는 단편을 단숨에 써내려 갔다고 한다.
깨작거리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뜻의
'니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가는 꼭 그리려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파리 하나에서 시작해서 나무 한 그루 전체,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멋진 세계를 상상하며
그 환상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 것이었단다.
그러나 그림은
이파리 하나에 지나치게 공을 들여 음영, 광택, 표면의 이슬방울까지 그리려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지지부진했고,
또 이웃들의 사소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 탓에 그림 그리는 일은 늘 방해를 받았단다.
어느 날 니글은 자기 수명이 다되어가는 걸 알고 엉엉 울었단다.
안타깝지만 화가는 세상을 떠나고
죄다 해진 캔버스에 아름다운 이파리 한 장만 오롯이 남은 그림이
유작으로 발견되어 마을 박물관에서 후미진 구석에 걸려 방치되었단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세상을 떠난 화가가 하늘나라에 이르렀을 때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는데
달려가 보니 그렇게 자기가 꿈꾸던
그 커다란 바로 그 나무가
완성된 모습으로 살아서 바람에 잎사귀를 흔들며 서있는
아름다운 자태를 보게 되었단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별 도움도 주지 못하는
미완성 이파리 하나를 그렸을 뿐인데
영원한 참 세계에서 구석구석 빠짐 없이 완성된 나무가
더 이상 상상의 선물이 아닌
영원히 살아 함께 즐거워할 나무로 서 있는 실재를 보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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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는 현실에서는 한 사람의 '니글'이 되어
더러는 자기가 품기엔 너무 버거운 비전을 품고 괴로워하거나
때로는 이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여 힘들어 한다.
이생으로 끝난다면 이런 비전을 품은 자들은 영락 없이 불쌍한 자들이지만
영생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믿는다면
우리는 영원을 향해 씨를 뿌리고
묘목 한 그루를 심는 자들이다.
팀 켈러 목사는 이어서
현재의 삶 밑바닥에서, 또는 그 너머에 참다운 실재가 있는게 분명하고
이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
부르심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선한 수고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하나하나가 영원무궁한 가치를 갖는다고 격려하며
바울 사도의 고린도를 향한 편지를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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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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