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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십자가로 칼을 삼지 맙시다

by kainos 2020. 5. 5.

잘 믿는다는 신앙인들이 흔히 빠지는 기본적 오류에 이런게 있죠. 전선을 구축하고 적과 아군을 나누고 저것은 나쁘고 이것은 좋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자세는 동성애. 이슬람, 종북, 진화론 등의 이슈들을 이데올로기화해서 그 문제에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대신 다른 여러 안타까운 이슈들에 눈을 닫게합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저쪽을 더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우리가 잘 믿는 것 같은 착시에 빠지게 하는 문제가 있죠. 신앙이란, 누군가를 미워해야 좋은 신앙일까요? 

나는 신앙은 "자기진술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고후2:17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 본문을 읽으면 마치 법정에서 최후진술하는 것 같은 장면이 상상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나의 영원하신 변호인이신 그리스도를 힘 입어 담담하게 내가 믿고 살아온 믿음, 내가 일평생 붙잡으려 했던 복음을 목에 힘주지 않고 차분하게 진술하는 장면 말이죠. 거기에는 남의 허물과 죄를 들춰내는 우월함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어린 양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베어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 하는게 아니고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죠.

'어디까지, 언제까지 우리가 참아야합니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담담하게 우리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답해주신 분은 다름아닌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 혐오를 선동하는 어떤 동영상에서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우아한 믿음이라고 비난하던데, 설사 우아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라고 비난 받더라도 저는 십자가를 거꾸로 잡아 칼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십자가는 "나를 위한" 형틀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흔적을 붙잡고 그게 전부인줄 착각하며 혐오의 신학이라는  늪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분들이 측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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