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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프로페셔널리즘을 생각하며

by kainos 2020. 5. 8.

구라봉사회(救癩奉仕會) 설립 50주년 기념 책자를 만들기 위한 원고를 부탁받았습니다.

매년 7월이면 무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한센인들을 위해 땀흘리며 수고하는 서울치대구라봉사회 후배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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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페셔널리즘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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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 봉사회에 하계 진료에 가면 학생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습니다. 대체로 총의치 제작 과정에서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떻게 하면 그리고 언제나 자신들의 진료 역량이 높아질 수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그때 못다 한 얘기를 여기에서 나누고 싶습니다.

치과의사는 전문인(프로페셔널)입니다. 전문인은 전문인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치과전문인 역량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기술 역량, 둘째는 윤리 역량, 셋째는 관계 역량이죠.

기술 역량은 일차적으로 학부 과정을 통해 배우지만 전문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일생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그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모든 술식의 과정마다 기억해야 할 세부 사항이 있고, 이 지식을 기반으로 치료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몸의 근육 하나하나가 기억하도록 연마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 이 숙달된 기술을 선하게 사용하겠다는 다짐과 결단 속에서 둘째 역량인 윤리 역량이 증진됩니다. 그러나 환자에게 유익을 끼치는 전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역량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환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 역량이 필요합니다. 환자뿐 아니라 진료실 안과 밖에서 진료를 돕는 모든 분들과도 협력하며 관계 역량을 세워가야 합니다.

최근에 제가 번역한 『치과임상윤리』(명문출판사)라는 책에서는 전문인 윤리(professional ethics)를 “내면화되고 습관화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에 가장 잘 부합되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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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5일 오후,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노스캐롤라이나 샬롯 행 US항공 1549편 항공기가 조류 충돌로 인해 이륙 5분 만에 맨해튼 허드슨 강으로 추락한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2016)은 이 실화를 소재로 한다. 사고 당시 비행기에는 승객 150명과 조종사 2명, 승무원 3명 등 모두 155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경찰과 소방당국 및 인근을 지나던 선박과 자원봉사자들의 신속한 구조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고 전원 구조된다.
당시 설렌버거 기장이 관제탑과 교신한 내용에 따르면 사고 순간에도 기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다. 기장의 침착한 음성은 무얼 말해주는가? 그의 태도는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 때를 대비한 수많은 가상훈련과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많은 생각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내린 많은 선택의 결과이며, 정직, 성실, 배려 등의 여러 값진 덕목이 합력한 결과라 생각된다.

톰 라이트라는 신학자는 그의 책 『그리스도인의 미덕』(포이에마)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미덕이란 선하고 옳은 일을 위해 노력과 집중이 필요한, 즉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없는 1,000가지 작은 결정 끝에 1001번째에 겨우 생기는 자연스러움이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셀렌버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선택과 행동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미덕은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 제2의 천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제1의 천성처럼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분석한다. ‘새내기 조종사들처럼 생각나는 대로 행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필요한 조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특정한 강점으로 무장된 성품이었다. 즉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을 정확히 아는 미덕과 더불어 용기와 절제와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타인을 위해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결단과 같은 좀 더 일반적인 미덕들이었다.‘

미덕이란 인간의 참된 목표를 지향하는 마음의 습관을 기르고 그런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것이 바로 성품을 계발한다는 말의 뜻이다. 성품과 미덕이 제2의 천성이 되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기독교적 견해이다. ( 『오늘을 그날처럼』, 새물결플러스, 이철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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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라는 전문인이 환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는 일련의 과정이 있습니다. 『치과임상윤리』에서는 이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먼저는 ‘자격에 대한 신뢰(trusting that)’입니다. 학부는 이 자격을 취득하는 준비 과정이죠. 처음 병원을 방문한 신환이 의료진의 자격증을 둘러보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둘째로 ‘말에 대한 신뢰(trusting what)’입니다. 환자는 자기를 진료할 의사와 대면하게 됩니다. 그때 환자는 의사와 나누는 몇 마디 대화를 통해 진료 능력을 가늠할 뿐 아니라 의사가 제시하는 설명이 순수한지를, 달리 말하면 말의 ‘진실성’을 파악합니다. 그 말이 신뢰할 만하다 싶으면 환자는 의사에게 자기 몸을 맡기고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과정을 통하여 의사가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설 때 세 번째 신뢰인 ‘그 사람에 대한 신뢰(trusting the person)’를 내줍니다. 이 과정의 반복을 통해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인격적이고 상호 협력하는 완전한 신뢰관계가 이뤄집니다.

젊은 치과의사들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의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면화되고 습관화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보여주는 선배들의 멘토링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배움을 동료들과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는 것입니다.

치과계는 지금 상업주의 거센 격랑 앞에 놓여 있습니다. 조급함 때문에 환자의 고통과 불편감을 이용하고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깨트리면서 프로페셔널리즘을 잠식시킨다면 사회공동체는 우리를 향한 신뢰를 거두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몸담은 치과계라는 배는 침몰할 수 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구라봉사회를 통해 전공의 사회적 책임을 배우고 다짐하는 후배들의 수고가 아름답습니다.

부디 치과계에 본래적 가치와 의미를 지켜내는 기둥과 같은 전문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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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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