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인의 품격 >>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나름 열심히 잘 치료 해드린 환자가 있었다. 아드님이 모시고 온 어머니 환자였다. 그 아들이 먼저 치료 받고 만족해하며 늘 치아가 좋지 않으신 자기 어머니가 맘이 아프다 하면서 모시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치아가 너무 많이 상해서 몇 개는 발치 후 임플란트를 심었고, 몇 개는 보철 치료를 해드렸다. 그 중 두 치아는 고민스러웠다. 빼자니 조금 아깝고 살려서 쓰자니 충치가 잇몸 아래까지 퍼져서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아들 보호자와 오랜 상의 끝에 이 치아 둘은 몇 년 쓸지 모르지만 쓸 때까지 쓴다 생각하고 일단 신경치료하고 씌우되 나중에 오래 못가면 발치하기로 결정했다.
치료 후 몇 년 뜸 하다가 어느 날 아들로 부터 전화가 오기를 노기 띈 목소리로 따질 일이 있어서 오겠단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 아들과 가족 일행이 들이닥쳐 손해 배상하라고 소란을 피웠다. 영문을 모르고 당하고 있자니 다른 환자들 앞에서 자존심과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한 주 전 종합병원에서 어머님의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치과 검진의로부터 대뜸 '이거 어디서 했냐, 누가 이 따위로 했냐'는 등의 험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치료 계획을 세울 당시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았던 나로서는 몹시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챠트를 살펴보다가 그때 그 보호자와 나눴던 대화 내용과 치료 계획 결정에 대한 우려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을 발견하고 보여주면서 말했다.
'다른 치료 받은 치아는 건강하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가 이 치아 두 개의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오래 전에 이런 얘기를 나누고 이렇게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제 기억이 나는데 당신은 어떠냐?'
그러자 몹시 무안해진 그 아들은 씩씩거리다 가족들과 함께 나가버렸다.
그 뒤로 그 간의 신뢰관계, 상호소통 관계는 그 날로 끝장났고 다시는 그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우리 치과로 오지 않았다.
그 종합병원 의사, 좀더 정확히 말하면 몇년 선배인 그 의사가 몹시 미웠다. 학생때도 깐죽거리던, 후배들 치료하는 것을 기웃거리며 비아냥대던 그 냥반은 그 나이에도 그 모양이지 싶으니 인생이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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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번역하고 있는 치과윤리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전문인 사이에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할 때, 무엇보다 고려해야 할 대상은 전문인 서로가 아니고 바로 의뢰인인 환자다. 어떻게 해야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서 말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먼저 치료한 치과의사의 명백한 잘못이 발견되고 그것이 반복적이며 환자에게 해롭다면 그것을 발견한 치과의사는 법적인 다툼을 감수하면서라도 환자의 편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판단이 애매하고 개인적인 사견일 뿐이거나, 실수로 보이는 것이 위중하지 않고 반복적이지 않다면, 환자에게 그 치과로 다시 가서 치료를 받도록 권하는게 좋다. 그리고 먼저 치료한 치과의사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나 메일을 통해 권고할 사항을 권고해주면 된다.
얼핏보면 전문인 간의 봐주기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전적으로 환자를 최우선에 두고 결정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 전문인 집단은 그들의 전문성으로 자신들이 속한 사회공동체를 섬길 책임과 의무가 있고 또 그러기로 (개인적으로가 아닌 집단적으로) 서약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윤리책이 권하는 내용들이다.
전문인의 말과 행동은 의뢰인 앞에서 자기 지식을 자랑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않된다. 지식을 펼칠 때는 의뢰인과 사회공동체의 유익을 고려하면서 진중해야 한다.
그것이 대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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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한(?) 몸을 다루는 일개 의료인의 전문인 윤리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사람의 영혼을 다룬다'는 목사 신학자들의 지식 나눔에 예의와 품격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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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서 가끔 나는 이 말을 크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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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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