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의 오랜 고객이신 장로님으로부터 오래 전에 선물 받은 책입니다. '원장님에게 잘 어울릴 책'이라고 하시면서 주셨지요. 정말 저에게 잘 어울리고 저자가 좋아하는 단어인 '공명'이 잘 되는 책입니다.
저자 마틴 슐레스케는 바이올린 제작자 입니다. 물리학을 공부한 바이올린 마에스토로이지만 일상 신학자라고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성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굳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제작 과정과 평행하게 달리는 흐름입니다. 그 흐름을 따라 요약과 소감을 써봅니다.
나무
먼저 저자는 좋은 바이올린은 좋은 가문비나무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좋은 가문비나무란 수목한계선의 척박한 땅에서 가지를 떨구며 힘들게 자란 나무를 말합니다. 풍요로움과 기름짐 속에서 얻어진 목재가 아니라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치밀하게 조성된 추재의 폭이 넓은 나무가 울림이 좋다고 합니다. 고통을 이겨낸 나무가 공명이 깊다는 것은 꼭 나무에게만 적용되는 통찰은 아닐 겁니다.
죽음
고통을 이겨낸 나무가 노래하는 나무, 즉 악기가 되려면 안타깝게도 죽음을 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서신서와 계시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새 노래, 새 생명 등에서 사용되는 '새(kainos)'라는 형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위에서 당하신 죽음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새 노래는 죽음을 통과한 나무가 비통함과 환희가 어울어진 온몸으로 떨며 울어주는 노래겠지요.
공명
좋은 악기가 내는 소리에는 조화로운 대립이 있음을 저자는 일러줍니다. 친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조화로운 대립 속에서 공명이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공명없는 악기는 그저 간단한 선의 떨림이 전부입니다. 공명은 악기의 생명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저자가 소리의 공명에 관한 연구로 물리학 디플로마 공부를 했기 때문에 더욱 더 절감하겠지요.
그러나 공명은 위험한 요소로 공명이 깊은 악기는 현의 진동을 방해해서 연주자에게 잘 복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러 대의 바이올린 속에서 합주하는 바이올린 이라면 깊은 진동보다는 하모니가 더 중요할 것 입니다만 독주 악기는 깊은 진동이 필수 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다 독주 악기 일 수도, 일 필요도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요.
저자는 공명에서 예수님의 전형과 파격의 조화의 삶을 읽어냅니다. 십자가는 엄청난 호소력을 지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도, 강한 자의 성공도 아닌 시련을 겪는 자의 희망, 부름받은 자의 충성, 조롱당하는 자가 보여주는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균형
그러나 악기가 그러하듯, 우리의 삶에는 균형을 향한 추구가 있어야 한다고 이 일상신학자는 시야를 주변으로 확장합니다.
은혜와 일의 균형 속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내버려둠과 형상화의 균형 속에서 신뢰를, 계획성과 즉흥성 속에서 방해받고 좌절할 용기를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균형 속에서 우리의 삶은 노예가 아닌 봉사자가 되고, 삶에 입맞춤하면서 장인의 지혜로 나무를 존중하며 창조의 삶을 살아내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작도된 직선보다는 천천히 그려지고 구부려진 나선형으로 결을 따러 그어진 곡선의 삶이 더 맞다고 합니다.
소명
그러한 곡선의 삶은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 보다는 용납하게 되고, 어두운 마디의 흠결 속에서 아름다운 공명을 읽어내는 소망의 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소명의 사람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게 되고, 타인의 외모보다는 그 속의 울림과 가능성을 보는 사랑의 눈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원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로서 우리는, 한쪽 눈으로는 자신을 겸손히 바라보면서 다른 눈으로 형제의 곤란 속에서 예수님의 곤고를 읽어내는 긍휼의 눈을 가져야 하겠지요.
또 하나님의 악기로서 우리는, 고장나서 제 음을 내지 못하는 악기를 바라보는 소유자의 안타까움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의 시선을 읽어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임재는 마치 현을 접하는 활처럼 일방적이지도 고정적이지도 않아서 상호 소통하며 우리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조율
하나님의 악기인 우리는 늘 조율되어야 하며 조율된 악기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조율이란 성품의 단련이고, 이 단련 없이는 목적이 아닌 수단에 더 탐욕스러지며 본질이 아닌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겠지요.
모든 사람은 각기 카리스마를 가진 고유한 악기이고 고유한 공명판을 가지고 있어서 그 악기가 음악을 연주하는게 아니라 음악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나를 통해 그의 음악을 연주하고 계신 것 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악기인가. 나는 누구인가, 잘 조율된 악기인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역설 속에 진리가 있고 고통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 음성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서로 상호 의존하며 살아갈 때 그 안에는 삶을 유지시켜주는 거룩한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있다면, 소명의 삶을 살아가는데 힘과 에너지가 필요함을 느낄 것 입니다. 우리의 소명이 에너지를 요구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우리의 힘을 뺍니다. 그렇지만 삶에 힘쓰지 않는다는 것은 소명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뜻 일 겁니다.
교향곡
하나님의 나라는 교향곡입니다.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루고 연주되는 협주곡, 각자의 소리를 지녔지만 쉴 때와 연주할 때가 어우러져 한 마음으로 연주될 때 작곡가의 음악과 생각이 청중에게 들려진다고 합니다.
신학자이며 예술가
그는 끝으로 모든 사람은 신학자이며 예술가이어서 자기의 삶을 해석하고 형상화 해나갈 과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삶을 해석하고 살아내는 것이 바로 사람됨의 본질이라는 말은 탁월한 일상 신학자의 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 담겨진 일상 속에서 잘 우려낸 성찰은 깊은 녹차 맛 입니다. 씁슬하고 약간 떫은 듯 하지만 입속을 아련히 훑고 지나가는 단맛은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오랜 여운이 남습니다.
허투루마투루 사는 삶 속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진지하되 조급하지 않고 여유있지만 나태하지 않은 삶 속에서 우려낸 깊은 통찰을 저도 잘 우려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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