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금 긋기>
진리에 관해 말하는 사람 중에 필요 이상으로 울타리를 치고, 금 긋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편 내편 따지며 진리의 범위를 정하기에 바쁘죠.
진리를 사랑한답시고 그 영역을 정하고, 포용 없는 태도로 다른 사람을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진리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신을 믿는 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힘을 키우는 것! 경계를 알려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 뿐이다."
진리의 영역을 정하는 것보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자꾸만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편협하게 규정하고자 하는 조악한 즐거움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우리는 세계의 탄식을 듣고 힘을 모아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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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제동 걸기>
종교적 진리에 관한 문제는 참으로 민감합니다. 이에 관한 질문은 대개 거칠고 시끄럽습니다. 그 소란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 엄청난 확신의 힘으로 부딪힙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서로 지배하려 하며, 날카롭게 자기 주장을 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에 관한 논쟁 같지만, 속을 보면 그냥 알력 싸움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자기 신념을 내세우는데 정신을 쏟습니다. 이는 결국 우위 다툼이며,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상대를 누르는 일이 됩니다.
학문적으로 옳고 그름을 밝힐 때는 명확한 증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문제에서는 증명이 아니라 진실한 보증이 중요합니다. 정신적으로 참된 것을 밝히려면 믿을 만한 보증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보증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 입니다.
나는 지식의 빵으로만 살지 않고, 정신의 확신으로 삽니다. 나는 지식을 습득하지만, 나를 떠받치는 확신을 경험합니다. 나는 파악하는 인간인 동시에 감화된 인간입니다. 그 둘이 같이 가지 않는다면 내 삶은 가련해질 것입니다.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의 실존은 가련합니다. 진리의 가장 강력한 보증은 사랑입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니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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