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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통한 사랑만 남는다. (2012-05-04) 안양할머니, 우리 스태프들에게는 욕쟁이 할머니라는 별명이 더 친숙한 분이시다. 우리 치과를 출입하신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처음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게 있어 걸쭉한 욕설로 말문을 여시면 나와 우리 스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었다. 그 욕설이 점차 익숙해지고 당신을 어설피 대하면 원장 볼기를 때려주겠다는 협박이 친근해지기 시작해졌다. 처음 해 드린 부분틀니를 10년쯤 사용한 뒤 남은 치아들을 발치하고 완전틀니를 하게 될 즈음이 되어서야 기세등등하던 욕설도 점차 줄어들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봄날 안양할머니는 손수 딴 봄나물로 갖가지 반찬과 찰밥, 그리고 쑥떡을 해오셨는데 마침 그날 따라 우리 치과는 문을 닫고 휴무였다. 먼 길을 오셨는데 병.. 2023. 2. 3.
Integrity (2012-04-04) 몇 년 전 아직 치과보험이 널리 퍼지기 전의 일이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중년의 비즈니스맨을 치료해드리며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겼다. 그는 구치부에 두 개의 임플란트가 필요한 상태였으나 미루다가 치료 받기를 결심하였다. 치료계획을 설명 듣고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냐고 묻자 머뭇거리더니 자신이 가입한 치아보험이 인공뼈 시술을 전제로 보장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게 필요한지 여부와 필요 없더라도 시술했다고 진단서를 작성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어느 정도 아는 사이에 어렵게 부탁한 것을 들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미국치과의사면허 시험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치과의료윤리 시험 문제가 생각나 자료를 다시 뒤적이며 이러한 윤리적 이슈들을 미리 경험하고 정리해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였다. 그들은 이를 ‘제.. 2023. 2. 3.
그릇을 닦으며 (2012-02-29) 그릇을 닦으며 어머니, 뚝배기의 속끓임을 닦는 것이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곡차곡 그릇을 포개 놓다가 보았어요, 물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주셔요.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윤미라님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공부 중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불교시인 난포 윤미라님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윤미라님의 '그릇을 닦으며'라는 시를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설거지할 때 된장 뚝배기 같은 그릇 내면에 묻어 있는 속끓임을 닦는 것이 물론 힘들고 잘 닦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것보.. 2023. 2. 3.
내 안의 PAUSE 버튼 (2012-02-06) 오래전 심리학 교수님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치료가 다 끝나자 "무의식적으로 치료하시죠?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시죠?"라고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본인의 전공에 충실하게 진료하는 나를 분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 사람의 마음속은 안정되고 평안함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즉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의 연속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단다. 의사이며 목사인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의사들과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교에서 의사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로 만물을 상대화시키려는 경향을 지적한다. 상대화란 끊임없이 가해지는 외부의 공격에 대해 자신의 감수성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막 같은 것으로 모든 일에 감정을 제거하고 .. 2023. 2. 3.
영혼의 생리식염수 (2012-01-04) 10여 년 전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던 어느 날 그날도 아침 묵상을 통하여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입고 출근하였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정기적으로 예방 관리를 잘 받으셔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60대 여자 구환이 한 분 찾아오셨다. 잇몸이 부었다고 해서 보니 평소와 다르게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그분의 잇몸을 보고 원인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보여 지나가는 말로 혹시 피곤한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며 한숨을 내쉰다. “어젯밤 한잠도 못 자고 눈을 붙일 수 없었어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제가 벌 받은 거에요. 제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신실한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지만 믿지 않는 시댁에 시집와 신앙을 다 까먹고……. 제 아들이 남들 부러워할 수재인데, 최근.. 2023. 2. 3.
봉사의 추억 (2011-12-05) 신선설농탕이라는 맛집이 있다. 신사동 굴다리 근처에서 시작한 이 음식점은 이제 많은 체인점을 거느린 회사가 되었다. 이 회사의 대표 오청씨는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그는 7000원짜리 설렁탕 14만 그릇을 팔아야 버는 액수인 개인 돈 2억 원과 회사 돈 8억 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의 밥 차’를 몰고 다니며 배고픈 이웃에게 3년간 설렁탕 4만5000 그릇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그의 '기부 경영'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① 직원을 부자 만들고 (정규직 고용) ② 거래처를 부자 만들고 (쌀값 떨어진 액수만큼 쌀 사 오는 마을에 농기계 기부) ③ 밥과 돈을 나눠 사회를 부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심한 고생을 겪.. 2023. 2. 3.
위생사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2011-11-01)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임플란트 연수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라이브 수술(Live surgery)을 통해 연자와 대화하면서 수시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흔한 수단이지만 그때만 해도 라이브 수술은 낯설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신지식을 배운다는 신기함보다도 정말 희한하게 생각 들었던 일은 교수께서 수술하시면서 수시로 스태프에게 드릴링의 각도는 맞느냐, 평행하냐 위치는 맞느냐, 잘되고 있느냐고 계속해서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의 행동 속에는 스태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치료계획을 설명하거나 치료를 진행할 때 우리의 스태프들을 무시하거나 의식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 2023. 2. 3.
먼저 우리 스태프들을 미소 짓게 하자 (2011-10-04) 얼마 전 신인가수를 발굴해내는 인기 TV프로에서 멘토인 김태원은 멘티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발달 심리에서도 사람은 격려받고 기대하는 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치과에서도 그러하다. 스태프들에게 활발하고 적극적인 진료 보조 역할을 기대한다면 의사는 자신이 하려는 진료 내용과 그 의미를 잘 가르쳐 주고 또 주의할 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궁금한 것들을 물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처음엔 기대한 만큼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점차 진료에 재미를 느끼고 진료 능력도 향상될 뿐 아니라 자존감도 높아진다. 또한, 그들이 새로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우리 일터는 훨씬 밝아지게 되며 이러한 분위기는 환자들에게 흘러넘치게 된다.. 2023. 2. 3.
존중받기보다는 존중하며 (2011-08-25) ‘빨래엔 피죤’이라는 카피는 가정주부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있다. 섬유 유연제라는 독보적인 제품으로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던 이 회사가 올 들어 경쟁사에 역전되더니 급기야 20%대로 추락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직원들을 폭행하고 불신하며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오너의 오만한 경영에서 비롯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고객 감동에 앞서 직원 감동이 먼저라는 전직 임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90년대 후반, 어느 해인가 위생사가 과잉배출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명을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냈더니 10여 명 이상 면접하겠다고 즉시 연락이 오고 면접 때문에 진료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용모 단정하고 재기 발랄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유독 평범하고 착해 보이는 지방 출신의 지원자가 있었다. 주목을 .. 2023.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