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면허 시험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치과의료윤리 시험 문제가 생각나 자료를 다시 뒤적이며 이러한 윤리적 이슈들을 미리 경험하고 정리해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였다. 그들은 이를 ‘제3자 지불방식’(Third party payment & managed care)의 문제로 분류하고 미국치과의사 윤리강령(American Dental Association's Principles of Ethics and Code of Professional Conduct, 5 B 1)에 명기해놓았다. 이에 의하면 제3자에 의한 치료비 결제에서 따로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금액을 면제해주는 등의 행위는, 그것이 자격에 부합하지 못한 환자에게 치료를 받도록 돕는 일이라 할지라도, 올바르지 않게 보험회사에 보고하는 것으로 사기, 허위진술 등과 같고 과잉청구와 동일하게 간주한다. 하물며 진료 요건을 위해 허위로 진료 내용을 진술하는 것은 말할 나위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을 파악한 뒤 환자에게 그것이 단순히 당신의 편의를 봐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범죄일 뿐 아니라 크게는 사회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설명해드리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당신이 정 부담이 되면 차라리 약간의 할인을 해드릴 수 있다 해도 이 요구에는 응해드릴 수 없다고 말씀 드렸다. 환자는 별거 아닌 요구가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좀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진실성 있게 설명해드리자 나중에 수긍했고 오히려 더 신뢰를 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 비슷한 사례로 찾아온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스텝들도 아쉬워하며 흔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치과 보험이 일반화 되면서 보험설계사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병원에서 허위진단서를 발급 받도록 유도하거나 심지어는 일부 병 의원 관계자들과 결탁하여 환자를 유치해주는 대가로 허위진단서를 발급한 범죄가 발각되어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 사건을 보고 스텝들은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길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일들이 있고는 환자들의 유사한 요구에 스텝들이 앞장서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설득하였다.
제3자 지불방식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보면 가장 간단한 예로, 자녀의 치료를 의뢰 받아 진료비를 부모로부터 받는 다거나 노인의 경우 아들 며느리 등으로부터 치료비를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조합 단위의 상호 부조 형태는 물론, 각종 회사의 직원 치료비 보조 및 각종 민간보험과 건강보험 등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초반에 고용주들이 고용인들을 위한 health care를 제공하게 되었고 처음엔 행위 수가제의 개념에 해당되는 usual and customary라는 제도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포괄 수가제도의 개념의 관리의료(managed care)제도로 바뀌면서 의료비 지출에 대한 관리가 강화되었다. 이런 변화로 인하여 환자와의 상담에서 보험 수혜여부와 그 한계에 대한 주제가 빈번하게 다뤄지게 되었으며 환자들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사에게 보험회사의 요구에 맞춰주기를 강청하게 되었다. 대개의 경우 보험회사에서 제시하는 치료 가이드라인이 의사들이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치료계획과 잘 부합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으며 이 경우 민감한 이슈들 앞에서 의사들은 윤리적 판단이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제3자 지불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만약 어떤 학생이 치료받고 멀리 있는 부모에게 치료비를 부풀려 받아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하고 그 중 일부를 자기 유흥비로 쓰려한다면 그것을 들어줄 의사가 있을까?
보험 사기의 그 극단적인 예로는 지난해 11월 강원도 태백시에서 보험설계사와 병원들, 주민 400여명이 가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태백시의 3개 병원은 2007년 1월부터 4년 동안 환자를 허위로 입원시켜 건강보험공단에 요양비를 부당 청구하는 수법으로 모두 17억1000만원을 가로챘으며 보험설계사와 가짜 환자들은 허위 입•퇴원 확인서를 병원으로부터 발급받아 보험금 140억 원을 부당 지급받았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소도시 태백에서 이런 보험사기가 가능했던 것은 인구 감소로 경영난을 겪던 병원과 쉽게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소문에 솔깃한 주민들의 죄의식 결여와 부정에 대한 고발 의식 부족, 관리 감독 기관의 느슨한 지도•점검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경찰은 분석했다.
서양 교육의 핵심 가치 중에는 Integrity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성경에 자주 사용되는데 아쉽게도 우리말에는 이와 상응하는 단어를 찾지 못하여 ‘정직, 온전함, 충성스러움, 성실함, 완전함, 바름’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성경은 다윗을 이러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신다. 나는 이 단어를 ‘진정성, 진지함’ 등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러한 Integrity의 자세로 자기의 눈앞의 이익 앞에서 갈등 되지만 옳은 길을 선택할 때, 자기의 건강한 성품도 build up되고 나아가 사회의 신뢰도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치과의사협회 윤리강령에 의료윤리 4대원칙인 autonomy(환자의 자율성), do no harm(위해 금지), do good(선행), justice(공평)와 함께 veracity(truthfulness, 신뢰성, 정직)의 원칙이 포함된 것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음미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ada.org/sections/about/pdfs/code_of_ethics_2011.pdf
DAVID T. OZAR AND DAVID J. SOKOL, 「DENTAL ETHICS AT CHAIRSIDE: Professional Principles and Practical Applications」, Washington, D. C: Georgetown University Pres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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