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심리학 교수님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치료가 다 끝나자 "무의식적으로 치료하시죠?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시죠?"라고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본인의 전공에 충실하게 진료하는 나를 분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 사람의 마음속은 안정되고 평안함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즉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의 연속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단다.
의사이며 목사인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의사들과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교에서 의사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로 만물을 상대화시키려는 경향을 지적한다. 상대화란 끊임없이 가해지는 외부의 공격에 대해 자신의 감수성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막 같은 것으로 모든 일에 감정을 제거하고 객관화하는 태도이다.
물론 끊임없이 가해지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이는 정신적인 습관을 낳게 되어 결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정직하고 용기 있게 나아가지 못하는 폐단이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고통, 기쁨, 경이로움 등의 감정을 잃게 되어 인간으로 당연히 가져야 할 생동감을 잃게 된다고 지적한다(마틴 로이드 존스, ‘의학과 치유’ 생명의 말씀사).
그 교수님은 나를 이렇게 분석하였던 것 같았다. 물론 그럴 수도 있으나 내 경우는 매번 판단의 분기점마다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다고 설명해 드렸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저녁마다 하루 일과를 가지고 하나님과 기도상 앞에서 씨름하고 쏟아내지 않고는 편한 잠을 잘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교수님께 "저에게서 평강을 느끼셨다면 감사한 데 그 평강은 많은 눈물을 통해서 얻고 있습니다." 라고 설명 드리자, "당신을 분석한 바로는 상당히 자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눈물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하시며 많이 놀라셨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심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다. 심리학에는 수많은 분석은 있지만, 답을 주지 못한다.
거기에는 죄와 대속이 없기 때문이다.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통해 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과 그리스도의 보혈은 마치 Bonding agent의 A와 B Primer처럼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 같다.
스티븐 코비는 그의 저서 <성공하는 가정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우리에게 오는 자극과 우리의 반응 사이에 간격이 존재하는데 이 넓이가 사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렇다, 자극에 동물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미숙한 사람이라고 하며, 깊이 숙고하고 반응하는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코비는 성숙한 대처를 위해 자극이 올 때 Pause(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극과 나의 반응 사이에 일시 정지가 아닌 ‘일시 죽음’ 버튼이 필요하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갈 2:20). 이 죽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반응이 아닌 예수님의 반응이 나가게 된다. 이런 반응을 통해 우리의 속에는 회개에 합당한 성품이 형성되어 갈 것이다.
이러한 삶은 단순히 그리스도 중심(Christocentric)의 삶을 넘어 그리스도 동형(Christomorphic)의 삶이 되고 우리 속에서 그분의 형상이 점차 모양을 갖춰가게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경 국내 치과의사 대다수인 약 1만 5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사이트 덴트포토에서 일부 회원들이 치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조직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진료거부를 선동하였다. 심지어는 방사선 사진을 찍기 싫어하며 동요 심한 치아의 발치를 요구한 환자에게 마취도 없이 발치 한 일을 버젓이 무용담으로 올리는 등의 행위가 일간지에 보도되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매일 각양의 환자들 앞에 어찌 보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럴수록 더욱 방어막을 견고하게 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을 겪지 않게 된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에게 오히려 무장을 해제하라고 한다. 그 보호막을 걷어 내고 환자에게 인격 대 인격으로 다가가 함께 웃고, 울라고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이나 스태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간단한 대화에 대하여도 모두 다 아는 듯이 반응하는 심드렁한 상대화의 자세를 버리자.
한편으론 ‘아 그렇구나!’라는 경이로운 마음을 취하고 다른 한편에는 ‘아, 내가 왜 그렇게 했지?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회복하자. 감탄과 눈물! 이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강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 앞에 어떤 환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때로는 적대감으로, 때론 고집불통으로, 어쩌면 상처받은 짐승처럼 우리에게 으르렁거릴 수도 있다. 그럴 때 즉각적인 반응을 잠시 멈추고 내 마음의 버튼을 누르고 그리스도와 함께 울고 함께 감탄하자.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죽음이 필요하다.
오늘 당신은 기뻐합니까? 그러고 싶은데 누군가 당신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일 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도 눈물이 말라 버렸거나 십자가 앞에 눈물 흘려본 게 오래 전 일 겁니다. 그 말라버린 눈물샘이 다시 흐르게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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