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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명언

은사, 말씀, 신학

by kainos 2020. 8. 16.

깜깜한 인생길을 갈 때 우리는 여러 종류의 도움이 필요하다.

당장 왼발을 디뎌야 할지 오른 발을 내밀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은사는 눈 앞에서 내주는 "손뼉" 소리와 같다.
마치 방향 지시등 처럼 그때 마다 우리를 낙심이나 좌절에서 구해준다.

그러나 좀더 손을 내밀어 몇 걸음 앞을 바라보고 싶다면, 그리고 그것이 옳바른 길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말씀이라는 "등불"이 필요하다. 몇 걸음 또는 골목길의 끝자락을 비춰줄 수있어서 가는 길의 굴곡 정도는 가늠하게 해준다.

반면 신학적 지식은 우리의 시간적 공간적 좌표를 알려주는 "지도"와 같다.
우리가 어디서 떠났는지, 지금 이곳은 어디인지, 어디 쯤 가고 있는지, 나아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특히 종말론은 북극성과 같아서 우리의 궁극적 좌표를 알려준다.
이 지식은 우리의 궁극의 목표를 일러주기 때문에 좌고우면 하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해 한 길로 달려가게 해준다는 커다란 유익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으면서 느리고 큰 걸음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지식은 당장 눈 앞에 놓인 땅이 진흙 밭 인지 웅덩이 인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 가끔 어떤 쪽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몰라서 균형을 잃고 웅덩이에 빠진다 해도 이 지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내 경우가 그러하다. 방향성은 알겠는데 디테일과 정확성에서 매우 부족하다)

인생길, 칠흑같은 어두움에 처했을 때는 당장 눈앞에서 도움의 손길인 은사자의 기도도 필요하다.
하루하루 걸어가는 여정 속에 말씀을 풀어주는 설교자도 필요하다.
그리고 먼 이정표를 바라보며 우리의 좌표가 어디인지 알기 위해서는 신학자의 지식도필요하다.

만약 어떤 은사자가 말씀과 신학의 무용론을 펼치거나,
설교자가 은사적 무감각과 신학적 무지를 자랑한다면
그리고 신학자가 은사와 말씀 앞에서 오만한 지식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참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우리의 능력은 짧고 인생길은 험난하다.
이것이 은사도, 말씀 묵상도, 신학적 지식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 이기도 하다.

존중하며 격려하며 한 길가는 순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8년 8월 16일 오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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