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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일과 신앙이 하나되는 생활 5 - II. 삶과 신앙의 일치를 위하여(1.성경적 윤리 비전)

by kainos 2020. 9. 6.

II. 삶과 신앙의 일치를 위하여

 

1. 성경적 윤리 비전

성도와 성도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삶의 방식을 살기 원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구약 윤리는 삼각형으로 표현됩니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은 각각 신학적 꼭지점, 사회적 꼭지점, 경제적 꼭지점이라고 부릅니다. 신학적 꼭지점이란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행하심, 하나님의 말씀에 반영되어 있죠.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율법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성품을 공동체 안에 반영하고 지향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꼭지점이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압제와 탄압이 그치고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기를 지향합니다. 이스라엘 안에 잔학함과 압제로 인한 억울함과 분함이 해소되고 의와 공도의 사회가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했습니다.

경제적 꼭지점이란 땅으로 표현되는 이스라엘의 경제적 기반이 일부에 편중되어 세습되지 않고 경제적 정의가 실현되도록 희년이라는 리셋 버튼을 설계하여 안전 장치의 기능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 삼각형의 세 꼭지점이 한쪽으로 찌그러지지 않을 때 이스라엘은 한숨과 절망이 아닌 안녕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삼각형은 현대의 선교지의 안정된 복음화 전략에도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 개화기에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올 당시 선교사들은 신학적 꼭지점인 교회를 개척하였고, 사회적 꼭지점인 계급 문화 철폐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개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자 대학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 기관을 설립했죠. 또한 경제적 꼭지점으로 제중원 등의 의료기관 설립을 통해 구제와 긍휼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선교지에서도 교회 개척의 전통적 선교, 비즈니스 미션(BAM)을 통한 사회변혁과 제도 개선, 긍휼과 구제 사역의 지역사회 개발 선교(CHE)로 공동체 균형 발전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구약 윤리가 특정 시점에서 공동체의 횡단면을 보여준다면 신약 윤리는 시간축에 따른 종단면적 성격을 갖습니다.

리차드 헤이스는 그의 책 『신약의 윤리적 비전』에서 신약의 통일된 윤리적 해석을 위해서는 세 개의 렌즈가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근거이며 은혜의 출발점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기록 되었듯이 십자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 신실함을 드러내는 제자도의 표시입니다. 그것은 고난이며 권리의 포기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무엇이 실재인지를 읽어내고 살아내는 대안적 제자도 공동체입니다. 세상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세상 돌아가는 룰을 설명합니다. 거기에는 세상적 가치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해석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다시한번 재해석 하여 따를 만한 것인지 아닌지, 달리 말해 사망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를 재해석해주고 그러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지지해줍니다. 이 대안적 공동체를 지배하는 룰이 있다면 용서와 관용으로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셋째는 새 창조입니다. 새 창조는 소망의 근거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 땅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를 견인하는 힘입니다. '믿음'의 제자로 십자가를 지고, 새 창조를 '소망'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 신약의 윤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달리 말하면 과거에 받은 은혜와 믿음을 출발점으로하여, 새 창조로 도래할 종말적 소망을 바라보면서, 여기 이곳에서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에 의거하여 공평과 정의, 구제와 긍휼의 정신을 공동체 안에 실현시키는 것을, 신약의 교회 공동체는 십자가의 은혜를 근거로 제자도의 자세로 새 창조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지금 여기 내가 속한 교회와 사회 공동체 속에서 사랑의 법을 실현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성도라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힘쓰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기억과 기대의 공동체인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서 늘 힘들게 살고 손해보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