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교적 필요성
선교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도시화의 물결 앞에 선교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냐고 묻던 과거와 달리,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 선교사가 어느 오지를 들어간다해도 이미 어디서 왔는지 알 뿐 아니라 심지어 왜 왔는지 조차 노출되기 쉽상입니다. 의료, 교육 및 저개발 지역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이른 바 '지역사회 개발 선교(CHE, Community Health Evangelism)'라 불리는 전통적 선교 방식은 대상국이 개발도상 국가로 제한 될 뿐 아니라 접근의 깊이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지켜내는 제자로 양성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의 선교는 BAM(Business As Mission)으로 패러다임이 전이되고 있지요.
폴 스티븐스의 분류에 따르면 비즈니스와 선교와의 관계는 이렇게 변해왔습니다. 과거에는 비즈니스와 선교는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비즈니스는 선교를 후원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Business for Mission). 그러다 점차 기업체나 다양한 일터에서 기독교 신앙을 표방하는 사업체들이 세워집니다(Mission in Business). 그러나 비록 기독교 기업임을 표방하였지만 인사 재무 노무 영업 등에서 정작 세상의 방식과 다를 바가 없거나 오히려 사회의 지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비즈니스를 미션으로 간주하면서 신앙적 가치를 드러내며 경영하는 비즈니스 애즈 미션(BAM)의 형태로, 나아가 비즈니스 자체가 미션임을 드러내는 비즈니스 이즈 미션(BIM) 방식으로 변모합니다. 심지어 로잔 국제 선교 위원회는 ‘비즈니스는 선교이며 소명이자 그 자체로 사역이다. 인간의 활동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누리기 위해 선한 과정을 거쳐 선한 것을 창조하고, 창조적이 되도록 지음 받은 우리의 거룩한 근원을 반영한다.’라고 선언합니다.
접근 제한 지역의 의료인 선교사님의 사역 경험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역사회 개발사역으로 1기 사역을 마쳤지만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 들어와 구제와 긍휼 사역을 하려는 것에 의심으로 눈으로 보는 눈들이 많아서 사역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안식년을 보내고 2기 사역을 준비하면서 비즈니스 미션의 형태로 사역 방향을 전환하고 의료기 수입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 성과는 예상 밖으로 좋아서 현지 의료인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수월해 진 것은 물론이고, 가치관이 비슷한 의료인들과 함께 팀을 구성하여 벽오지에 의료 봉사를 하기도 수월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 의료의 가치, 돈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게 되고 신앙을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애로 사항은 직원을 고용하고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삶의 모든 면이 투명 유리처럼 노출되기 때문에 마치 샘플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일터에서의 생활이 신앙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복음 증거는 말짱 헛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고린도 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대로 비즈니스는 삶을 나누는 통전적 복음이어야 하고 주님의 비즈니스는 우리의 모든 삶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복음은 삶을 통해 나누고 전해야 하기에 삶과 분리된 신앙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복음 전도 명령은 문화 명령과 나눌 수 없고 결국 복음은 말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Being)와 행함(Doing)을 통해서도 전파됩니다. 신앙인이 현장에서 신앙의 향기를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속한 여러 영역에서 그 모습이 파편화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에서의 모습, 가정에서의 모습, 일터에서의 모습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다면 신앙적 실패일 뿐 아니라 인생의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통전적 복음이란 존재(Being)와 행함(Doing)과 선포(Proclamation)를 합한 것이며 달리 말하면 지상 명령과 문화 명령의 합이 될 것입니다. 교회, 일터, 각종 소속 단체 등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파편화된 삶의 모습을 뛰어넘어 하나되고 통합된 전인적 삶, 전체적 복음을 지향한다면 삶과 신앙의 일치는 당연한 귀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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