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말론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질문1). 종말은 포맷팅인가 업그레드인가?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죽음 이후에 부활의 삶이 있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삶은 현재의 삶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전혀 연속성이 없을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흔히 우리가 죽고나서 부활하면 부모 형제 간에 서로 알아볼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이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이후에 행하신 일들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를 몰라보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알아보시며 대화도 하시고 궁금해하는 것도 답해주시고 심지어 제자들을 위해 생선도 굽고 식사를 차려 주시기까지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보신 것을 보면 부활에는 변화된 모습이라는 불연속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알아보시면서 못자국을 보여주시고 대화하시는 것을 보면 적어도 기억의 연속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전혀 새로운 별개의 삶이면서 동시에 연속된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몰트만은 부활은 급격한 불연속성 속에 존재하는 연속성이라고 했습니다(This is a conitinuity in radical discontinuity, or an identity in total contradiction). 비유를 하자면 부활은 새 컴퓨터를 사면서 이전의 헌 컴퓨터의 데이터가 모두 사라지는 포맷팅이 아니라 새 컴퓨터이지만 이전의 데이터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새로운 외형과 새 프로그램을 장착한 전혀 새로운 컴퓨터로 업그레드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세의 기억과 성품이 연속되기 때문에 부활 이후에도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그대로 남겠지요.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면서, 변화시킬 수 없는 영원한 날의 후회거리인 잡초를 심을게 아니라, 영원한 보람과 기쁨의 묘목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연속성의 관점에서 오늘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질문2). 종말은 멸망인가 완성인가?
검색 엔진에서 ‘종말’ 또는 ‘end time’을 검색해 보면 전쟁, 멸망 또는 파국의 이미지가 압도적입니다. 우리에게 종말은 두려움의 시간입니다. 기대하기 보다는 미루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를 인류 타락의 결과 하나님께서 진노를 쏟아 부으신다고 생각한다. 마치 밥상 앞에서 손자들이 까불고 아들 부부는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꼴을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밥상을 둘러 엎으시는 것으로 종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분노를 촉발하지 않게 조용히 밥을 먹는것을 신앙 생활이라고 생각한다.’(포항제일교회 박영호 목사님의 SNS 포스팅에서 인용함)
종말은 파국과 멸망이 아니라 신부가 그렇게도 기대하고 갈망하던 신랑과의 결혼이 성취되는 것(consummation)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만물이 회복되는 종말을 소망하고 기대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마치 징집 영장이 언제 올지 몰라 두려워 떠는 것처럼 사는 게 타당한지, 아니면 신부가 결혼과 신혼 생활을 기쁨으로 기대하듯이 종말 이후의 삶에 합당한 모습을 그리면서 정결하게 사는게 타당할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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