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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나는 하나님

그가 찔림은 (2011-07-22)

by kainos 2023. 2. 3.

 

 

 
 

개업의에게 세금은 목에 박힌 가시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남들 하는 대로 신고하고 적당히 납세하고 있었을 때 어디선가 의사들 세금 문제가 들려오면 늘 숙제 검사를 두려워하던 학생의 마음으로 편치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무조사 통지가 병원에 날라 왔다. 진료실에 주님이 찾아오신 후로 뭔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일,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있던 차에 ‘이런 문제를 들이대시는 것은 좀 심하신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의 예고된 시간이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작년 장부를 뒤적이다가, 차트를 만지작거리다가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예고된 날 아침 너무 답답한 마음에 새벽부터 잠이 깨고 뭘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집 근처 교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설교 말씀도 들어오지 않고 기도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깜깜한 예배당에 인기척이 없었다.
짓누르던 중압감에 내가 처한 처지가 마치 형틀에 묶여 태형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 생각에 몰입되자 조사가 시작되는 것과 형틀에 묶이고 몇십 대의 채찍을 맞는 것과 오버랩이 되면서 어깨 위를 타고 넘어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목구멍에서 기도는 고사하고 신음조차 막을 정도의 두려움이었다.

 

 

그 순간 내 등을 덮고도 남을 큰 어깨가 나를 감싸는 듯했다. 채찍을 내려치는 듯함과 그것을 그 분의 등으로 다 덮어 주신다는 느낌, 숨 막히는 안도감과 그분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시는 듯한 느낌들이 죄송하고 민망하다는 생각들과 함께 뒤엉키면서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내 입술 사이에는 오열이 새어 나왔고 그것은 점차 통곡으로 변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컴컴하던 예배당 마룻바닥에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병원으로 출근했다. 시간이 좀 지나 공무원 두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마치 새벽에 나를 위해 등을 대주셨던 주님께서 보내신 분들 같았다. 그들이 요구하거나 질문하는 모든 것에 공손하고 담담하게 답해 드렸고 그렇게 조사가 진행되었다. 일주일간의 조사가 끝날 무렵 서로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진심으로 협조에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추징된 세금을 납부하고 그렇게 일이 마무리 되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멀리서 찾아오신 환자가 있어 누구 소개로 오셨는지 여쭤 보자 잘 말씀을 하지 않았다. 치료가 다 끝난 뒤 조심스레 다시 묻자 자기 가족이 나를 조사했던 분인데 꼭 여기로 가보라고 하였단다. 내가 부담 느낄까 봐 말씀하진 않았지만 자기 가족을 믿고 맡길 만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 또 시간이 흘러 두 사람 중 다른 분이 퇴직하고 세무사가 되어 치료받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치과 치료를 생각하니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났단다. 우리는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고 즐겁고 유쾌하게 진료를 시작했다.

 

그 후로 소득신고를 포함하여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할 때, 내 눈앞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인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와 함께 송구하고 민망하던 그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주님을 기쁘게는 못할망정 나 대신 채찍을 다시 맞게 해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로 인해 기뻐하신 주님과 나로 인해 채찍을 감당하셨던 주님, 그 두 모습이 이후로 진료실에서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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