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엔 피죤’이라는 카피는 가정주부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있다. 섬유 유연제라는 독보적인 제품으로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던 이 회사가 올 들어 경쟁사에 역전되더니 급기야 20%대로 추락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직원들을 폭행하고 불신하며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오너의 오만한 경영에서 비롯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고객 감동에 앞서 직원 감동이 먼저라는 전직 임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90년대 후반, 어느 해인가 위생사가 과잉배출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명을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냈더니 10여 명 이상 면접하겠다고 즉시 연락이 오고 면접 때문에 진료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용모 단정하고 재기 발랄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유독 평범하고 착해 보이는 지방 출신의 지원자가 있었다. 주목을 끌 만한 특징이 없어 상투적인 질문 끝에 희망 보수를 묻자 고개를 뚝 떨구고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면허시험에 떨어졌으니 실습생 보수로 족하다고 한다.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지원자들은 어디에 지원해도 모두 좋은 직장을 잡을 것 같은데 이 사람은 도무지 여기 아니면 직장 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못했다.
다시 불러 찬찬히 보니 성품이 좋고 성실해 보였다. 가정 형편상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시험 준비가 부족했다고 한다. 내년에 재 응시해 꼭 합격하기로 약속하고 실습생에 해당하는 일만 하는 조건으로 채용하였다.
특이하게도 그 지원자가 제시한 조건은 아무개 씨라고 이름을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호텔 메이드와 휴게소 음식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하대하는 것에 마음이 많이 상한듯했다.
그때만 해도 스텝들에게 존칭으로 ‘미스O’대신에 ‘OO씨’라고 이름을 불러 달라는 것은 나로선 파격이었고 다소 당돌하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고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2-3년 후 어느 날 그가 급성 간염으로 한 달을 입원하게 되었고 졸지에 선배직원 한 사람과 힘겹게 진료를 꾸려가게 되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던 중 이름만 존칭을 마지못해 썼지 진정으로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수단으로만 대했던 것을 책망하시며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깨달았다. 스무 평 공간의 왕처럼 생각하고 직원들을 신하처럼 여겼지, 여태껏 인격으로 대하지 못했던 것을 직원들에게 사과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진료실 청소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의 노고와 애환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다행히 그 직원이 빠르게 회복되어 퇴원했지만 청소는 계속하였다. 청소가 어느 정도 익숙해 지고 나의 일상이 될 즈음, 서로 간에 조금씩 이해와 신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점차 내 말투도 지시에서 부탁으로, 명령에서 청유로 바뀌어가며 존대를 하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과 긴장은 우리 일터에서 사라지고 투명한 관계와 웃음이 생겨났다. 짬짬이 집안 사정이나 개인적인 고민도 서로 나누게 되고 점차 내가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들려주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교회를 다니고 싶다고 하여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청년부로 안내해주었다. 원래 밝은 성격이었지만 더욱 밝고 명랑해져서 항상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그 자매가 선배가 된 이후로 후배들을 진심으로 존중해주며 좋은 일터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결혼하고 직장을 옮겨 다른 곳에서 실장으로 일을 잘 하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자매가 남기고 간 밝고 명랑하고 즐거운 일터 분위기를 생각하면 고맙기 한이 없다.
진료실 청소는 2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간에 아내와 마트
에 가면 새로 나온 청소도구 사는 게 취미가 되었다. 지금도 난 아내와 대형 마트에 가면 청소 용품을 기웃거리다가 아내의 핀잔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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