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임플란트 연수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라이브 수술(Live surgery)을 통해 연자와 대화하면서 수시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흔한 수단이지만 그때만 해도 라이브 수술은 낯설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신지식을 배운다는 신기함보다도 정말 희한하게 생각 들었던 일은 교수께서 수술하시면서 수시로 스태프에게 드릴링의 각도는 맞느냐, 평행하냐 위치는 맞느냐, 잘되고 있느냐고 계속해서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의 행동 속에는 스태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치료계획을 설명하거나 치료를 진행할 때 우리의 스태프들을 무시하거나 의식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우리 스태프들의 눈과 귀를 통해 우리의 치료행위와 대화하는 내용을 보고 듣고 계신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환자뿐 아니라 스태프들에게 치료 내용을 설명하는 데 더욱 노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태프들을 이해 시키는 것, 그것이 정직한 진료의 출발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원장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수긍한다면 환자들에게 진심 어린 설명을 우리 대신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우리가 옳지 않은 또는 일관성이 결여된 치료계획을 환자에게 강행한다면 그들 마음이 불편하게 되고 결국 그들의 속앓이는 하나님께로 향한 그들의 탄식이 될 것이다.
스태프들이 인정할 수 없는 진료의 방향과 질은 치과계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그렇게 이슈화된 사회 문제들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몇 년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치과계 소독 문제가 그러했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네트워크 치과의 과잉진료 문제 또한 그러하다. 이제 또 어떤 문제가 우리의 손을 떠나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까? 심히 염려되는 상황이다.
폐 금 문제가 항상 직원들 보기에 떳떳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관례처럼 폐 금을 모아 처분해서 병원 운영에 사용하던 것이 과연 직원들의 눈과 귀에 납득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용납하지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 문제를 직원들과 함께 솔직하게 고민하고 중지를 모았다.
‘먼저 환자의 동의를 구하자, 그리고 동의하신 분들의 폐 금을 모아 처분해서 적절한 곳으로 송금하자!’ 이렇게 의견이 모였다. 동의서의 형식을 만들고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소년소녀 가장 돕기 하는 곳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스태프들도 그런 결정에 만족해했고, 그 의견대로 시행한 지 몇 년이 되었다.
이제는 환자의 동의를 얻는 것에서부터 처분과 송금 등의 모든 과정은 내 손을 거치지 않고 스태프들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며, 나는 결과만 보고 받는다.
스태프에게 '우리 원장님의 설명은 항상 진정성이 있으며 진료에는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원장인 우리도 실수를 많이 하기도 하며, 때론 필요에 의해서 과장할 때도 있다. 그럴지라도 빠르게 실수를 인정하고 스태프들에 따로 진심이 담긴 설명으로 양해를 구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원장의 좋은 진료를 위해 더욱 성심껏 도울 것이고, 나아가 원장의 컨디션 조차도 세심하게 신경 써줄 것이다.
진료실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치과계 전반의 신뢰 회복의 출발이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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