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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나는 하나님

그릇을 닦으며 (2012-02-29)

by kainos 2023. 2. 3.

그릇을 닦으며

어머니,

뚝배기의 속끓임을 닦는 것이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곡차곡
그릇을 포개 놓다가
보았어요,

물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주셔요.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윤미라님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공부 중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불교시인 난포 윤미라님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윤미라님의 '그릇을 닦으며'라는 시를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설거지할 때 된장 뚝배기 같은 그릇 내면에 묻어 있는 속끓임을 닦는 것이 물론 힘들고 잘 닦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릇 뒷면을 닦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릇 내면을 아무리 잘 닦아봐야 뒷면에 지저분한 오물이 남아 있다면 그릇을 포개 놓을 때 다른 그릇 내면에 묻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려 깊은 사람들은 그릇의 뒷면도 잘 닦아 올려놓지요.

 

이 시가 말하려는 것은 그릇과 같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신앙 정결을 위해 속 사람을 씻고 그것을 위해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는다지만 그러나 기도상 앞에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기의 죄가 아닌 남의 허물입니다. 먼저 그 사람을 주께서 심판하신 뒤에 나를 다뤄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악한 본성이지요. 내 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가 더 커 보여 부글부글 끓어 오른 남을 향한 원망을 속끓임이라 표현한 시인의 시어는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나 된장 뚝배기 속끓임 같은 우리의 내면을 철 수세미로 문지르듯 어찌어찌 어렵게 용서를 구하고 정결하게 되었다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끼치는 죄스런 나의 행동들을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뒷모습을 깨닫지 못하니 자기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척척 자기 오물을 남의 앞면에 바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을 조망능력이라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조망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을 보기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진실은 항상 고통스러운 까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를 싫어합니다. 아니 두려워하지요. 그리고 스스로 옳다 하고 사람 앞에 높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미워하십니다(눅 16:15). 하나님께서 조용히 책망하실 때 부끄럽고 아프지만 정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심령의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서지고 낮아진 마음이 되는 거지요. 이렇게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은 힘들고 본성에 거스르는 것이지만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과 나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문제는 동시에 이뤄져야 할 일이며, 이 둘을 분리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밀양’이라는 영화가 이 문제를 기독교인들에게 질문하고 있지요.

 

그릇의 앞면이 믿음이라면 그릇의 뒷면은 행동과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쓰시고자 하는 주인과의 관계라면 후자는 공동체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릇을 앞과 뒤로 나눌 수 없듯이 믿음과 생활은 하나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내 믿음은 내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통해 구현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릇의 내면에 담긴 사랑은 그릇 뒷면인 배려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이 배려한다는 것은 통제이거나 이해 타산적 관계일 뿐 일 겁니다. 또한, 배려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먼저 변화된 사람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사명(mission)은 회개를 통한 죄 사함(remission) 이었습니다(눅 24: 46-47). 그러나 죄 사함을 통해 받은 이 사랑은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관심과 배려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포개진 그릇처럼 쓰임 받기를 기다리는 치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우리는 어떤 그릇인지 생각해봅니다.


이 시를 기도문으로 바꿔 보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남을 용서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주님의 쓰임 받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공동체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저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 더 어렵군요.

빛이신 주님께서 저를 비추실 때 제 죄를 깨닫게 하옵소서.

나와 늘 함께하는 내 동료와 이웃에게 사랑으로 배려하고 관심 두며 살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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