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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나는 하나님

관계를 통한 사랑만 남는다. (2012-05-04)

by kainos 2023. 2. 3.
 
안양할머니, 우리 스태프들에게는 욕쟁이 할머니라는 별명이 더 친숙한 분이시다. 우리 치과를 출입하신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처음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게 있어 걸쭉한 욕설로 말문을 여시면 나와 우리 스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었다. 그 욕설이 점차 익숙해지고 당신을 어설피 대하면 원장 볼기를 때려주겠다는 협박이 친근해지기 시작해졌다. 처음 해 드린 부분틀니를 10년쯤 사용한 뒤 남은 치아들을 발치하고 완전틀니를 하게 될 즈음이 되어서야 기세등등하던 욕설도 점차 줄어들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봄날 안양할머니는 손수 딴 봄나물로 갖가지 반찬과 찰밥, 그리고 쑥떡을 해오셨는데 마침 그날 따라 우리 치과는 문을 닫고 휴무였다. 먼 길을 오셨는데 병원 문이 닫힌 걸 보고 복도에 주저앉아 계시던 것을 같은 층의 신경정신과 원장님이 보시고 사연을 물으신 뒤 그 음식을 잘 받아뒀다가 다음 날 전해 준 적도 있었다. 그 원장님은 친척 할머니이신 줄 알았다가 오랜 환자라는 것을 알고 놀라셨다.


  언젠가는 점심이 다되어 병원에 오셨다가 허기진다고 짜장면 한 그릇 시켜달라고 해서 나와 직원들과 함께 비벼 먹기도 했고, 내가 보고 싶다고 할아버지를 앞세우고 안양에서부터 노인이 들기 버거운 큰 수박을 사오신 적도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서울엔 수박이 없어서 여기서 사가냐고 오시는 동안 계속 투덜거리셨단다. 최근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셔서 수척해진 몸으로 쑥버무리를 해서 가져오셨다. 왜 이렇게 틀니가 때가 끼고 더러워졌느냐고 여전한 욕설로 타박하셨다. 그런 욕설이 어디 한두 번이 아닌지라 그때마다 폴리싱을 해 드렸지만, 그날은 "할머니가 욕을 많이 해서 틀니가 더러워졌지."라고 대꾸하자 파안대소를 지으시며  "미친놈아, 욕한다고 틀니가 더러워지느냐? 그래도 네 말이 맞다! 인제 욕 안 할게!"라고 하며 우린 함께 웃었다. 이제 10여년 전 해드린 틀니도 잇몸이 너무 많이 가라앉아 헐거워져 수차례 수정을 해드렸고 이제는 더 해드릴 일이 별로 없고 그때마다 아픈 곳만 갈아드리고 있지만 이미 나는 틀니를 통하여 그 할머니의 삶 속에 한 의미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이 할머니를 치료하기 시작한 20년 전, 처음 개원했을 땐 내 머릿속엔 교합, margin, 인상 등의 기술적 용어만 가득했었다. 물리적인 최선이 최고의 치료라고 굳게 믿었고 상당한 자부심으로 치료에 임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그것이 전부라고는 이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치료해 드린 많은 환자도 그들이 겪는 세월 앞에서 마모되고 부러지고 소실돼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의 상당수는 환자들의 교합, 식습관, 잇몸질환 등 생물학적 고려사항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경험 미숙으로 실패한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치과의사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을 단 3단어로 줄여보라면, disinfection(소독), debridement(상처관리), restoration(수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끊임없이 더럽혀지고 나빠지는 환자의 구강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치과의사 홀로 애쓰다 보면 시지프스와 같은 좌절감을 매일 겪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예측이 불가능한 애매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공격적인 진료와 과잉진료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길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 반면 끊임없이 최선의 진료를 위해 노력하며 모든 결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책하는 치과의사들도 있다. 그런 후배들을 볼 때마다 뜨거운 격려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볼 순 있어도 젊음과 영원한 회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고 넌지시 충고해주고 싶다. 가끔은 환자로 하여금 의사가 돌볼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인식시켜주고 자신의 지나온 삶과 남은 시간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도 환자의 심신에 유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성을 다한다고 했지만, 근관치료 후 씌운 이가 염증이 재발하여 찾아올 때, 오랜만에 찾아온 환자의 보철치료가 뿌리까지 썩어 보철치료의 흔적만 남아있을 때, 잘 만든 보철물이 잇몸 염증으로 허망하게 무너져 가고 있을 때 우리는 당황스럽다. 그러나 환자의 기억 속에 마음을 다해준 의사로, 자신의 건강을 진심으로 위해준 사랑으로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치료해준 의사와 치료받은 환자가 아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선 연약한 두 사람으로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간 앞에 변해가는 상황을 인정하게 된다. 그것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환자에게는 성숙으로, 의사에게는 겸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 고인이 되신 H대 부총장님이셨던 P 박사님을 생각한다. 오랜만에 내원하셔서 그간 잘 지내셨냐는 안부 인사에 큰소리로 "원장님 저 암 걸렸어요!"라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을 때 나를 포함한 대기실에 앉아있던 다른 환자들도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분과 그날 진료라기보다는 시간 앞에 선 인간의 마음가짐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 앞에서 당당하고 겸손하며 지혜로운 태도를 보여주셨던 성숙한 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가슴에 남아있다.


  좋은 치료도, 그것을 위한 애태움과 조바심도 그리고 자부심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통한 사랑만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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