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들을 하게 되면 기쁨을 받은 사람보다 자신에게 크고 깊은 기쁨이 남게 됩니다. 사실 이 친구가 몰랐던 점이 있는데 우리의 기억들은 일생뿐 아니라 영생의 시간 속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죽음 이후에는 마치 컴퓨터가 다시 포맷팅되는 것처럼 모든 기억을 이 땅에 두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을 만났을 때 처음엔 그들이 알아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알아보며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걸 보면 삶과 죽음 사이에는 불연속성도 존재하지만, 연속성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달으면 오늘 우리의 행동은 남은 생애뿐 아니라 영원한 날을 향해 씨를 뿌리고 심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날을 위해 기쁨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고 후회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후회를 심었다는 것을 다행히 살아 있는 동안 깨달으면 이를 되돌리고 기쁨으로 다시 심을 수 있지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는 영원한 날에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오늘 이 땅을 사는 동안 부지런히 후회의 잡초를 뽑고 기쁨의 묘목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날에 이 기억들이 우리를 즐겁게 할 겁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사는 것이 바로 미래의 관점으로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계시록 4~5장의 찬양하는 천상의 무리는 그런 면에서 천상의 존재가 보여주는 현재의 실재를 묘사한 것입니다. 천국은 미래의 운명일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역에 속함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됩니다(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 IVP). 크리스천은 미래와 현재가 접속된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의 관점으로 현재를 변화시킬 책임을 부여 받았습니다. 다른 이에게 기쁨을 나누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날에 자신을 위해 기쁨을 심는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친구는 스스로 기쁨을 선사한 것입니다.
비슷한 경험이 제게도 하나 있는데 10여 년 전 중년의 품위 있는 부인이 한 분 찾아오셨습니다. 앞니 보철을 원하는 그분은 5년 전부터 시력이 상실돼 가고 있고 지척을 겨우 분간할 정도이지만 심미적인 보철치료를 해주되 무엇보다도 치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두려우니 세심한 배려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렴풋한 기억으론 그분에게 매 스텝마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과정을 설명해 드리면서 불안감을 없애 드리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무사히 진료를 마치셨고 저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최근에 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사이 그분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해서 치과의 정확한 위치를 잘 알아볼 수 없고 저도 치과 명을 한번 바꾼 터라 3~4년 전부터 백화점을 나오거나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묻기를 수차례 했다고 합니다. 그날도 백화점 나오는 길에 헛일 삼아 건물마다 들렀는데 마침내 치과를 바로 찾고 제 목소리를 확인하시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 손을 붙잡고 10년 전에 세심한 배려에 고마웠다는 말씀과 여러 격려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시력을 잃고 자기 처지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매사에 감사한 생활을 하기로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품고 있던 미움을 의지적으로 용서하다 보니 점차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평생 해야 할 일은 용서하고 감사하는 일이고, 남에게 덕을 많이 끼치시라’라고 말합니다. 두 손을 한참 붙잡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분이 가시고 제가 행한 작은 친절이 다른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감사하며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봅니다. 그것이 현세의 보람일 뿐 아니라 영원한 날의 기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늙어 갑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감이 성숙함과 병행하고 성숙함이 완고함이 아닌 유연함과 함께 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무엇을 심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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