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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나는 하나님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2012-09-04)

by kainos 2023. 2. 3.
 
 
IMF 외환 위기로 나라 안이 뒤숭숭하던 시절, 여파가 나에게까지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건물주였던 중견 제약회사는 레저산업에 투자했다가 부도를 내고 건물은 경매 처분되었다. 그 틈을 타 한 재미교포가 헐값에 건물을 인수하였지만 비상식적인 건물 관리로 세입자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급기야 단수 단전사태에 이르도록 일을 악화시켰다. 여러 가지 불안한 일들이 벌어지자 병원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물을 알아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나마 남아있던 옆 건물에도 치과가 들어와 도대체 옮길만한 곳은 없고, 이 건물에서는 권리금은 고사하고 보증금도 받지 못할 것 같은 난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내 신뢰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내 신앙을 견고케 하실지 모르겠다는 가냘픈 희망만을 붙잡고   있었다. 그때 읽었던 시편 말씀들은 답답한 내 마음을 나를 대신해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들로 읽혀졌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될 뿐 말씀은 단지 상황에 대한 내 인식이 어떠한지, 또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뢰는 견고한지를 시험하는 시험지처럼 보였다.

 

 


옮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자 병원을 내놓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몇몇 사람이 찾아왔다. 눈 딱 감고 이 상황에 입다문다면 권리금과 보증금을 챙겨 옮겨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양심상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생각할 때 그럴 순 없었다. 찾아온 분들께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정 들어오시려거든 권리금을 받을 생각이 없으니 현 건물주와 계약을 하되 건물이 경매 처분되면 보증금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오라고 말해주었다. 내 이익과 타인의 유익 사이의 갈등, 그것이 첫 번째 유혹이었다.


자리를 알아본 뒤 날짜를 정하고 어차피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그래도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하려던 중,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관리실 직원이 건물을 원상 복구하는 것이 의무이고 그래야 보증금을 청구 할 수 있다고 고맙게 귀띔을 해준다. 문제는 보증금도 떼일 판에 돈 들여 원상 복구를 하는 게 타당하냐는 것이었다.  받을 권리와 해야 할 의무 사이의 순위의 문제, 그것이 둘째 시험이었다.


이전엔 일이 생기면 친구나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도 하고 부탁도 하곤 했지만 이번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가족들은 여기저기 좀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타박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식과 양심의 판단이 중요했고 내 마음의 평안이 옳은 판단을 보증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원상복구를 다했으니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 우편만 달랑 한 통 보낸 뒤 아무런 확답을 받지 못했지만 그간의 마음 고생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까운 곳으로 치과를 옮겼다. 그리고 내키지 않았으나 돈에 혈안이 된 건물주를 향해 복을 빌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였다. 새 장소에 분주히 적응하던 한달 뒤 어느 날, 그 건물의 총무부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건물주가 당신에게 보증금을 갚아 주라고 해서 왔단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이번에 반을 한달 뒤에 나머지 반을 주겠다고 한다.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조치를 취한 게 의아했다. 한달 뒤 남은 잔금을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그 후 일년쯤 시간이 흘러 법원에서 편지 한 통이 날라왔다. 건물 경매 처분이 완료 되었으니 등기 설정된 보증금을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그 건물의 임자는 이미 바뀌었고 전에 총무부장이었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증금을 지불한 뒤 일부러 등기를 해지 하지 않았으니 내가 받아서 자기에게 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눠 갖자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손해를 봤고 이렇게 하면 손해를 좀 줄일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갈 길이 아니었기에 법원에 찾아갔다. ‘진작에 등기 해지를 하든지 아니면 그냥 받아가든지 할 것이지 지금 분배가 다 끝난 상황에서 작은 돈 가지고 번거롭게 됐다’고 법원 서기의 핀잔을 받아가며 포기서를 작성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 돈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를 확인하는 듯한 세 번째 시험이었다.


하나님은 한 사건을 제시하시면서 내가 당신을 찾는지, 그리고 그 분의 시선을 느끼면서 길을 선택하는지를 확인하셨던 것 같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 동시에 하나님도 사람을 찾으신다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을.


[편집자주]진료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열려있으니 원고를 보내주십시오(cheolgyu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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