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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나는 하나님

하나님의 초대 (2012-11-05)

by kainos 2023. 2. 3.
 
 1990년 3월경 제대를 앞두고 개원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무렵, 공직에 뜻이 있었지만 마땅히 오라는 곳도 없어 마지못해 개원을 준비하는 터라 썩 내키지 않았었다. 모아둔 돈이 없으니 다른 이들이 자리 잡았다는 곳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적은 돈으로 개업할 수 있는 자리를 찾던 중 영등포 인근의 허름한 공장 밀집 지역에 치과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중개인과 함께 갔다.

  60대로 보이는 원장님을 만나고 이야기가 잘되어 계약금으로 400만원을 전하고 왔다. 몇 일 후 정해진 날에 중도금을 어찌어찌 마련해서 치과로 찾아갔다. 그런데 치과는 문이 닫혔고 약속했던 원장님을 만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더니 이 분이 3중 계약을 한 뒤 나 외에도 다른 사람의 인수금을 받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생활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하늘이 캄캄해졌다. 스물 아홉의 서툰 어깨로 감당하기엔 시련이 너무 무겁고 차가웠다. 가족들에게 면목없고 답답해 책상 밑에 머리를 처박고 누워있던 어느 날, 친척 중 한 분이 새벽기도에 나가보라고 권한다. 교회 문을 겨우 넘나들기 시작한 터라 새벽기도에 나간다는 것은 낯설고 버거운 결심이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망설임 끝에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새벽기도라는 걸 처음 가봤다. 월요일부터 시작한 새벽기도였지만 셋째 날쯤 가서야 그때가 고난 주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내용의 설교를 듣고 마음 깊은 곳이 찔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비록 내가 예수님을 파는 거래를 한 건 아니지만 예수님의 개입과 승인이 없는 모든 거래는 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은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와 예수님을 파는 거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남들이 볼까 봐 흐르는 눈물을 숨기며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의 기도를 했다.

 


  교회에서 돌아오자 마자 대학원 의국세미나 참석을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이른 아침 치과대학의 엘리베이터 안은 세미나에 참석하는 대학원생들로 비좁았다. 그때 다른 과 선배 한 분이 “야, 철규 너 사기 당했다며? 어떻게 당했냐?”하는 말에,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사람들 시선은 내게 꽂혔다.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에 당황하며 서둘러 의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선배는 거기까지 쫓아와 어찌 된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이것 저것 따라 묻는데, 정말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선배는 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고 마침 자기도 병원을 내놓고 도심으로 옮기려 하던 참이어서 작지만 그런대로 운영이 잘되는 자기 병원을 나에게 인수시켜주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선배는 나에게 예비되었던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그 선배와의 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 주 토요일에 모든 거래는 마무리 되었고 아내와 뱃속의 아기와 함께 맞이한 부활절 아침은 처음 느껴보는 감격을 선물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은, 내 앞에 닥친 어려움은 하나님이 나를 만나기 원하셔서 보낸 초대장이라는 것이었다. 욕심으로 분주한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자주 놓치게 된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도로표지판을 읽지 않고 내달리는 우리 앞에 하나님께서는 장애물을 설치하시고 우리의 잰 걸음을 멈추게 하여 그 분 자신을 만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욥은 의롭게 핍박 받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한 악한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과연 어디 있냐고 불평한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욥기 42장에서 악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신다. 현상에 대해 답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현상 너머의 본질이신 그 분 자신께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신다. 모든 문제의 답은 그분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통해 그분 앞으로 초대해주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비록 당시에는 나에게 이런 악한 일을 행한 그 원장님에 대한 미움으로 기도를 시작하였고 그것조차 불쌍히 여겨주셔서 하나님께서는 못난 나에게 은혜를 부어주셨지만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실들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그는 악한 가해자고 나는 선량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선과 악의 경계가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 사이를 관통하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하셨다. 내 속에도 동일한 죄성이 있으며 조금만 마음을 잘못 먹으면 얼마든지 그 보다 더한 악을 행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여러 차례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악하고 나는 선한 피해자라는 단순 사고로는 우리에게 현존하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악을 행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끈끈한 섬유조직 같은 악을 바로 바라보고 예리한 검으로 나에게서 악의 문제를 박리하여 회개하고 또한 그에게서도 악의 문제를 박리해내 용서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톰 라이트,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IVP). 그리하여 우리가 취할 자세는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회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용서와 긍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치열한 생존의 자리의 맵고 차가운 도전 앞에서 분투하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좌절하는 후배님들께, 어깨를 감싸며 속삭여주고 싶다.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그대를 향해 베푸시는 초대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자고, 그리고 떨군 고개를 들어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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