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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삶책(책과 문화)

산둥수용소를 소개합니다.

by kainos 2020. 5. 4.

들어가는 말

  랭던 길키(Langdon Gilkey)의 산둥수용소(새물결플러스)라는 책이 좋아서 주변사람들에게 소개 하다 보니 북 컨서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작년 봄 크리스채너티투데이코리아(CTK)에서 2012년 올 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진료하는 의사로서 저는 명제적 선포보다는 실증적인 귀납적 진술을 좋아합니다. 저자또한 그러한 사고의 궤적을 보여 주는데 전반부엔 인간을 향한 집요한 관찰 기록을 세밀화 터치로 묘사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관찰에서 해석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는 청년 시절의 경험을 20년 가량 마음에 품고 있던 저자가 신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1966년에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5살의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의 관찰자 시점과 40대 후반의 중년 신학자의 분석적 시점이 혼합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2년 여의 독특한 경험의 질문을 20여 년 동안 머리와 가슴에 품고 끊임없이 답을 찾은 저자의 성실성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자 소개

   개신교 사역자인 외할아버지, 신학대 학장인 아버지의 신앙을 계승한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40년 북경의 연경대학 영어 교사로 봉사하다 1943년 일본의 ‘중국 내 외국인 격리 정책’에 의해 산둥수용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저자는 콜롬비아대에서 라인홀드 니버의 제자로 개혁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합니다. 신학적으로는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의 사상을 따르게 되며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카고대 신학부 교수로 재직합니다. 

수용소 생활

  산둥수용소는 생명의 위협은 없지만 상당한 압박이 가해지는 곳이었습니다. 선교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의 서구인 1500여 명이 좁고 열악한 거처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보건과 의료, 공중 위생, 식사 및 숙소 문제 등의 난관을 헤쳐가면서 기본적인 필요성들을 해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은 적절한 기술로 얼마든지 낙원을 이룰 수 있다는 낙관론에서 점차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며 비관론을 거쳐, 전적 타락의 개혁주의 교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

  저자는 인간 내면의 도덕성과 종교성을 관찰하며, 공동체의 모든 도덕적 문제들은 사실은 내면의 종교적인 문제가 외부로 표현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일견 견고해 보이지만 압력에 쉽게 무너지는 신앙, 헌신된 듯 하지만 왜곡된 신앙의 모습을 통하여 저자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도록 권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이 아닌 가족이나 민족 또는 종교적인 집단 등의 대상으로 향하면 이는 불의와 이기심의 뿌리가 되어 잔인함과 폭력으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우리가 믿고 헌신하는 대상이 그저 종교적 허상인지 아니면 참된 신앙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 우리의 삶은 거창한 구호나 이념이 아닌, 각 개인의 ‘성품’과 그 사람들을 이어주는 ‘인간관계’라는 실질적인 두 축에 의해 지탱됨을 알려줍니다. 

나아가 ‘그럼 나는 어디에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누구에게 내 삶의 궁극적 헌신을 바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원히 항상 계시고 또 우리가 공동체를 이룰 이웃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기 때문에 이념 속의 인류가 아닌 손을 내밀면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저자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

1. 일상에서의 신앙(삶과 신앙의 일치 그리고 임플란트) 

  신앙인에게 일상은 신앙과 삶이 부딪히는 현장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다투는 전투현장이 되고 우리는 전투원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싸웁니다.신앙이 구현될 수도, 반대로 실패하여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삶 속에서 신앙은 어떻게 구현될까요? 신앙이 삶과 완벽하게 결합된 것을 ‘삶과 신앙의 일치(integration)’라고 하는데 이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골유착성 임플란트(Osseo-integrated implant)’를 떠올리며, 이물 반응 없이 치조골과 완벽하게 결합되어, 동요와 통증이 없고 저작 기능을 잘 감당하는 임플란트를 연상합니다. 일상은 외부의 압력(Pressure)이 가해지는 곳입니다. 잘 ‘유착’된 임플란트는 저작력을 견뎌 냅니다. 1cm² 교합면에 60kg 정도 압력이 가해진다면, 이는 성인 여성이 구두 뒤꿈치로 밟는 정도의 강한 것입니다.  

이 책은 부제는 ‘The story of men and women under pressure’ 입니다. 상당한 압력의 수용소 생활에서 인간의 숨겨진 본성은 드러납니다. 신앙이 있다지만 어떤 사람은 본능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의미 있는 선택을 합니다. 압력에 흔들리고, 통증을 일으키는 임플란트를 실패로 간주하듯이, 치의학적인 관점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신앙은 실패한 것입니다. 안으로는 향기로운 성품과 밖으로는 섬김의 향기를 발하며 기능하는 일상을 살고 싶습니다.

2. 종말적 신앙 (산둥수용소 그리고 종말론)

   수용소에는 1450명이 있었고 그 중 200명이 미국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미국 적십자사는 각종 생필품이 가득한 1550개 꾸러미를 보내옵니다. 일본군 지휘관은 각 사람당 한 꾸러미씩 나눠주고, 남는 꾸러미 100개는 미국인에게 주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에 수용소는 기쁨과 호의가 가득한 분위기로 변합니다.

그러나 미국 재산이니 미국인 일인당 7개 반씩 모두 가져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주장하자 분위기는 실망과 적대감으로 급변합니다.

길키는 미국 대표단을 찾아가 골고루 나눠 갖자고 설득하지만 변호사는 법률적 지식으로, 선교사는 교묘한 신학적 지식으로 자신들의 욕심을 포장합니다. 결국 미국인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일인당 한 꾸러미씩 받고 남은 100개는 다른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저자는 미국인들의 탐욕적인 반응이 본능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적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동물적인 탐욕이 아니라 인간적, 사회적 반응이라는 겁니다. 언제 수용소 생활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꾸러미는 긴 수명을 보장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남을 해롭게 할 수 있지요.

꾸러미는 시간적으로는 수명의 연장을 보장할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는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입니다. 영화 설국열차가 주장하듯이 소유는 계급을 형성하고, 그 사회가 존속하는 한, 높은 계급은 긴 수명을 보장합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꾸러미에 대한 집착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더 안전하게,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열망이지요. 그러나 수용소의 결말이 어떠한지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수용소 사람들도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알았더라면 이런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는 종말의 시기가 언제인지, 섬길 이웃이 누구인지 묻고 그 경계를 지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와 '누구'가 아닌, '어떻게'로 답합니다. 우리는 수용소 같은 이 세상의 종말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수용소가 끝나면 전혀 다른 생활이 기다리지만(불연속성) 그 기억은 지속되듯이(연속성), 이 삶과 이후의 삶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함께 합니다. 오늘 우리의 행동은 영원한 날 아무것도 변화 시킬 수 없는 그 날의 시점으로 보면, 후회의 잡초를 뿌리거나 기쁨과 보람의 묘목을 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적 관점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종말론적 윤리의 핵심입니다.

영화 'About time'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I just try to live every day as if I've deliberately come back to this one day" (시간여행을 통해 심사숙고 끝에 바로 이날로 돌아온 것처럼, 그렇게 매일을 살려고 노력한다). 만약 미래로부터 오늘로 돌아왔다면 영원한 날을 향해 우리는 오늘 무엇을 심겠습니까?

 

맺는 말

  이 책의 키워드는 일상, 성품, 관계성, 헌신 입니다. 문장으로 연결하면 이렇게 됩니다. ‘당신의 일상은 삶과 신앙이 잘 일치되어 있는가, 일상은 (내면의)성품과 (외부로는)관계성으로 유지된다.

당신은 하나님께 헌신하는가 아니면 종교적 허상에게 헌신하는가? 당신은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누구에게 삶의 궁극적 헌신을 바칠 것인가?’

크리스채너티투데이(미국) 잡지 선정 "20세기 100권의 책"인 이 책이 뒤늦게 소개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교계가 성공과 번영만을 외쳐왔고 스스로를 조망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이라도 한국 교회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점검하고 멈춰서는 용기가 있기를 기도합니다.일상의 삶과 신앙이 견고히 일치되어 미래적 종말적 관점으로 오늘을 후회 없이 살기를, 그것을 위해 서로 권고하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책망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다시 이 책을 듭니다.

 

2014년 11월 11일 오후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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