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회 학술대회 발표 내용을 소개하는 글)
-회복의 날을 기대하며-
십 수년 전, 후배들과 함께 미국치과의사 면허에 도전해 본 일이 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도덕적 사회에서 양심적인 진료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컸기 때문이다. 먼지 덮인 기초서적을 뒤적이는 것보다 힘든 일은 처음 보는 의료윤리학으로, 그것은 나에겐 충격이었다. 직업윤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 지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로 진출하는 것은 잘 익은 과실을 향해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의 의료윤리분야를 기독인 치과의사들이 앞에서 이끌고 있으며 새로운 가치와 사회적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저들은 어떤 교회에 다니길래 세상에 나와 활동하도록 격려받고 있는가? 도대체 저들을 지도하는 목사들은 어떤 신학을 공부했길래 크리스찬들로 하여금 교회로만 모이는 church man이 되기 보다는 세상을 경작하라고 하는가?
또 나는 자책했다. 우리 사회의 유익을 위해 나는 어떤 기여를 했는가? 치과윤리학 서적을 읽어가는 스터디 모임을 기점으로 긴 탐구생활은 시작되었다. 치과의료는 생명의 시작이나 끝을 다루는 생명윤리(bioethics)가 아닌 전문인 윤리(professional ethics)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윤리란 개인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나아가 세계관은 신학의 응용학문이라는 사실도 신학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사이 의약분업 사태를 시작으로 의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여 의료인의 신뢰도는 곤두박질 쳤다. 치의학 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될 때 윤리교육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상업주의의 파도가 조바심을 자극하여 어떤 변종의료가 나타날지 염려스러웠다. 교차감염, 과잉진료의 문제 등의 이슈들이 대두될 때마다 사회공동체는 우리의 직업 윤리는 건강하냐고 의심 어린 질문을 던져왔다. 이러한 이슈들에 대하여 치과의사들이 대답을 미루는 동안 치위생사, 기공사, 재료상 들을 통해서 질문이 계속 제기되었고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회는 치과의사에게 치과공동체의 오케스트라를 이뤄 모집단인 사회공동체를 섬길 지휘자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우리가 지휘자로서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꿈이 있다. 신앙인들이 중심이 되어 존중과 섬김의 치과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좋은 치과 만들기 운동’이 일어나는 것, 존중 받으며 예의와 품위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위생사, 기공사, 재료상 들과 더불어 정직하고 일관성 있게 환자를 대하는 것,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을 이용하지 않고, 그들을 건강한 몸으로 속히 자기의 역할로 복귀 시켜달라는 사회가 부탁한 책임을 다한 뒤에 그 기쁨과 보람을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영원한 날에 주님과 함께 기뻐할 기쁨의 소재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복될 치과공동체를 생각하면 부담감과 함께 여린 흥분이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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