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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욥기에 대한 단상 1. - << 욥의 노래 >>

by kainos 202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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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성경 중에서 계시록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책은 욥기 입니다.

욥기는 참 신비한 책입니다.

누군가 잠언은 정오의 태양이라고, 전도서는 어스름한 황혼이라 한다면
욥기는 칠흙 같은 어두움과 같다고 했습니다.

신명기적 사고에 의하면 복과 저주는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입니다.
잠언이 이 전통적 관점을 강화 시켜주는 반면,
전도서는 현실이 꼭 그런 건 아니지 않느냐 넌즈시 질문합니다.

반면 욥기에 이르러서는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왜 의인이,
그것도 자칭 의인이 아닌 하늘의 인정을 받는 의인이 고통을 받는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도전하며 우리를 곤경에 몰아 넣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데 비극은 서사로 묘사할 수 없고 연극이나 드라마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깊은 슬픔,
그것은 필설로 다 옮길 수 없어서 한편의 드라마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형의 이 땅의 모든 슬픔 들이 훗날 비장한 드라마의 소재가 될 것 입니다. 세상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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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를 읽으면서 이 본문으로 짧은 연극을 만든다면 전달력이 훨씬 강할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지루한 산문체가 아닌 대화체를 살리거나 운문체로 번역이 되었다면 훨씬 욥기의 정서를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이 아쉬움을 느낀 사람이 저 말고도 있었다는 사실이 반갑군요.
이번에 민음사에서 욥기의 절절한 정서를 담아 원문의 문체에 충실한 번역을 선 보였습니다.
세계 시인선 시리즈로 선보인 "욥의 노래"가 바로 이 책입니다.

총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울대에서 서양고전학을 연구한 김동훈씨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글을 읽다 보면
욥과 세 친구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장 주변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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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후기에서 욥은 세 괴물 즉, 재앙, 친구, 신이라는 세 괴물과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저는 욥이 전통, 특별히 신명기적 전통과 다투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욥기 이전에 의인의 고난도, 악인의 번성도 없었는지 알 수 없고,
욥기 이후에 악과 의가 미분화하며 형태적 진화를 거듭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욥을 향한 친구들의 정죄에도, 이에 맞서는 욥의 항변에도 논쟁의 근거는 신명기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논거는
[고난 --> 의인인가 --> 재앙을 보니 죄인인듯하니 회개하라]이고
욥은
[이유없는 고난 --> 재앙은 죄인에게 임하는 것 맞다. --> 나는 죄인이 아니다 --> 하나님이 실수 하셨다.]라고 항변하지만

두 흐름에 모두 '행한대로 거둔 다'는 생각이 공통으로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속에 욥을 향한 모방욕구 (mimetic desire)가 자리잡아 시기심이 발동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친구들의 정죄는 집요하고 마치 심판자의 논지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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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죄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셨듯이
때와 시, 이유와 근거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으십니다. 참 불친절해 보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의 답은 결국
하나님의 현현으로 문제 자체가 사라진다는 절대적인 진리가 답을 대신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복과 저주에 대한 인과적 해석이 아니라
주어진 복과 저주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실존적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강도당한 이웃 앞에서
똑똑한 교리 선생처럼 욥의 세 친구를 자처하는 오늘날의 얄팍한 기독교 문화를 볼 때 우리가 바로 욥의 괴물같은 친구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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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책 한권으로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지만

답답하고 우울한 오늘날
욥의 고난과 항변과 탄식의 숨결 - 비록 자식과 아내마저 싫어하는 숨결이 되버렸지만- 그 숨결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끝으로 책 중에서 생생한 문장 하나 옮겨 봅니다.

"적신으로 나왔도다
내 애미 자궁에서
나는 간다 적신으로 저만치

주신 분도 주님이요
거두신 분도 주님이니
찬양하리 주의 이름"

 

 

 

 

2016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