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상인가?
장자크 루소가 사회 계약론에서 현대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시민 종교](civil religion)라는 단어는 국가의 신성한 권위와 함께 국가를 통합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유대의 한 형태를 의미하며 '신의 존재'와 '내세'와 '권선징악'과 '종교적 비판에 비관용함을 배제'하는 것들을 교리로 한다고 하는데
좀더 들여다 보면 시민종교란 국가주의나 세상 권력에 절대적(신성한) 지위를 부여함으로 이 권력이 내세우는 가치와 혜택을 받은 자들이 섬김과 충성의 의무를 다하고 세상 권력을 우상으로 섬기는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본래의 신부된 본분을 망각하고 창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민종교의 전형이다. 계시록이 말하는 "우상"은 바로 그것이다.
나도 모르게 시민종교적 가치관에 우리가 젖어있는지를 부단히 점검하고 소외되고 낙오된 이웃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가져도 내 겉옷과 속옷에 베어있는 우상의 타는 고기 냄새를 다 없앨 수 없다는 탄식과 눈물을 통해 이 시민종교의 우상을 나로 부터 분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계시록의 핵심 단어는 "지키라"는 권면이다. 지키라는 말씀은 풀어보면 "신실함을 지키라"는 말이고 이는 '새 하늘 새 땅"이 곧 임하리라는 확신에 기인한다.
지킴이란, 핍박하기 때문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상의 잔치에 도저히 참여할 수 없기에 저항함으로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핍박은 사소한 일상으로 부터 출발한다. 광범위한 핍박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매일 우리가 씨름하는 여러 모양의 친절한 형태로 다가오는 악, 불의, 그릇된 충성에 대한 반응으로 읽어 내야 한다.
하워드-브룩, 과더는 “로마를 믿고 자만에 취해 있는 것 자체가 위기”라고 했다.
이는 우리의 위기는 거대한 외부의 강압보다는 일상의 안락함에 댓가로 요구되는 당연시 하는 믿음, 신념, 관습에서 오기 때문에 이렇게 지적했다.
보컴은 그래서 바벨론 제국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바벨론의 모자가 들어맞는 사회는 어느 사회나 바벨론이라고 풀어 설명했다.
권력자 앞에서 아첨하는 모리배들의 입술에서 달콤한 모습으로 우리 귓가에 속삭이는 음녀의 간교함과, 함께 눈물 흘려도 성치 않을 우리의 소외된 이웃을 품자는 목소리에 우상을 경계하라는 지각없는 헛스윙을 보면서
이 시대에 진정 무엇이 바벨론이고 무엇이 우상숭배함인지 깨우치기 위해서 요한계시록이 제대로 책임있게 읽혀져야 할 필요를 아니 "사명"을 느낀다.
계시록은 현실에 고분고분 순응하는 "교회"를 향해서는 문밖에 서서 강하게 두드리는 주님의 노크소리로 도전을 준다.그리고 음지 한켠에서 핍박받고 눈물 훔치는 "교회"에는 따스한 손길로 위로를 전해준다.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의 일부 내용을 제 목소리를 실어 요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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