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성경은 해석되어야 합니다.
군대 훈련소에 들어가면 제식훈련, 전투훈련과 함께 지도를 읽는 훈련인 독도법을 배웁니다. 독도법은 여느 훈련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전투력이 뛰어난 병사라도 지도를 읽고 지형을 파악할 줄 모른다면 아군 배후를 공격하거나 적군의 본진에 낙오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독도법 이론 교육이 끝나면 좌표를 주고 헤쳐모이는 훈련을 합니다. 훈련 코스 중간중간에 조교들이 적군 복장으로 매복해 있다가 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훈련병들을 붙잡아 얼차려를 줍니다.
독도법 훈련 코스에는 뜻밖의 마스터들이 숨어있는데 과자와 음료수를 이고 다니는 훈련소 인근의 아주머니들입니다. 이들은 코스를 훤히 꿰고 있어서 어디에 훈련 교관과 매복조가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과자와 음료수를 팔아준 훈련생들에게는 친절하게도 어디에 숨어 쉬고 있다가 몇 시쯤 합류하면 되는지도 알려 줍니다. 이런 마스터 길잡이를 만난다면 독도법이 필요 없지만, 만약 교관에게 걸리면 얼차려의 강도는 가중됩니다.
성경해석은 독도법과 같습니다. 평면 지도에서 능선과 계곡과 경사도를 입체적으로 읽어내듯이 성경 문서를 통해 글에 담긴 배경과 감정과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성경해석에서 이런 길잡이를 만난다면 편한 지름길로 안내받을 수 있지만 잘못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끌려갈 수도 있기에, 제대로 된 훈련으로 실력을 높여야 합니다.
성경해석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류는 시대착오, 청중 착오, 장르 착오입니다. 시대착오란 성경이 쓰였을 당시의 사회문화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오늘 이 시대 감각으로 읽으려는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의 메뚜기 재앙을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공격형 헬리콥터인 아파치 헬기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청중 착오란 성경 당시의 일차 독자 입장과 관점으로 읽지 않고 무리하게 나와 우리 교회에 주는 말씀으로 해석하려는 오류입니다. 장르 착오란 성경은 다양한 문학 형태로 쓰였기에 그에 맞는 지성과 감성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류입니다. 개그를 다큐멘터리로 받는다는 우스갯말이 있듯이, 시를 역사서로 읽는다거나, 서신을 교리 문답으로 읽는다거나, 아름다운 비유를 사실관계의 논증으로 읽을 때 이런 실수가 발생합니다.
고든 피에 따르면 성경해석은 어떤 독특한 비밀을 찾는 것이 아니고 계몽된 상식을 도구 삼아 본문의 원래 의미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독특함만 추구하다 보면 나만의 성경해석으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교만에 빠져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 쉽다는 겁니다. 그는 성경은 '사람의 말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라서 '역사적 특수성'과 '영원한 타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 읽기를 관찰, 해석, 적용의 세 단계로 나누지만, 신학자들은 성경해석 부분을 두 단계로 나눕니다. 첫 단계는 본문의 본래 의미를 추출하는 석의(exegesis)입니다. 본래 의미를 찾으려면 먼저는 기록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살펴봐야 하고, 문맥과 내용도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 단계는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아내는 해석(hermeneutics)입니다. 조각 유물을 모아 골동품을 복원하는 첫 단계가 끝나면 오늘 이 시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해석의 단계로 들어가는데 이 두 단계를 거친 다음에야 우리의 정황에 성경적 교훈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성경해석을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지만 본문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는 일을 건너뛰면 성경에 자기 생각을 주입하는 이른바 '자의적 주해(eisegesis=read into)'를 하게 되어 성경의 본의와 아무 상관 없는 해석을 하게 된다는 점을 고든 피는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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