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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과 종말론

요한계시록 개관 - 3.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상황은 이렇습니다.

by kainos 2020. 10. 15.

3.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상황

 

1) 누가 언제 썼는가?

계시록의 저자에 관해서는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이 썼느냐 아니면 당시 흔한 이름 중 하나인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장로 요한이 썼느냐로 의견이 나뉩니다.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문체, 문맥, 저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호칭, 요한의 다른 저술과의 문학적 유사성 등의 내적 증거와 속사도나 교부의 증언이 기록된 다른 외적 증거를 가지고 열심히 다툽니다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누가 썼느냐의 문제는 사실 저술 시기의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네로 황제 사망 직후(A.D. 69년경으로 추정)에 쓰였다고 주장하는 초기설과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A.D. 95년경)로 보는 후기설로 나뉩니다.

두 견해 사이에는 한 세대의 시차가 있습니다. 계시록의 성도가 당하는 핍박에 방점을 두고 보면 악명 높았던 네로 시대가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네로시대의 박해는 종교성을 띤 황제 숭배라기보다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한 직접적이고 제한적인 핍박이었다는 점과 이때의 박해는 계시록의 무대인 소아시아(지금의 터키)보다는 이탈리아반도에 한정되었다는 점이 약점입니다.

반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우리의 주, 우리의 신”이라 불리길 원했고 당시 주화에는 “신들의 아버지”라고 명시되는 등 현존하는 신으로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황제 숭배라는 측면에서는 도미티아누스 시대가 우위에 있지만, 공식적 박해보다는 은근한 사회적 경제적 압박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불리합니다.

그러나 주후 60년경 소아시아 지역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을 겪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3장 17절에 기록되었듯이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경제적 회복을 이루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정과 맞물려 학자들은 후기설을 더 지지합니다.

후기설을 지지하면 사도 요한의 나이가 90에 가까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령이기에 후기설은 자연스레 장로 요한 설로 기울게 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추정이어서 저자와 저술 시기에 대해서 어떤 조합이 맞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1:1)으로,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하고 예수를 증언하다가 밧모섬에 갇힌 여러분의 형제라고 소개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2) 왜 썼는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핍박은 크게 세 종류였습니다. 진리로부터 이탈케 하려는 이단과 거짓 교사들에 의한 ‘미혹’, 현실에 안주하여 문화적 동화와 타협을 유도하는 ‘유혹’ 그리고 비공식적이고 국소적이었지만 지역 당국과 유대인 회당으로부터 가해지는 고발과 ‘박해’가 그것입니다.

계시록의 저자는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합니다.

현실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다는 초월적인 실재(reality)를 굳게 믿어 박해를 견디고 이겨내라고, 눈 앞에 펼쳐진 현실 고난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의 영원의 관점에서는 실재가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성도의 명예를 지키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세상 권력에 대한 승리의 선언이고 이것이 바로 성도가 승리할 수 있는 근거이며 원동력임을 일깨우려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의 불순종하는 자들을 마침내 파멸시키시고 고통 속에 신음하는 당신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만물을 완전히 새롭게 회복시키실 것임을 알려 줍니다.

탄압받는 성도의 슬픈 탄식은 회복의 날에 하나님과 함께 장막에 거하며 부르는 환희와 승리의 노래로 바뀔 것도 알게 합니다.

성도에게 이러한 종말적 사실을 알려줘서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세상적 가치관에 굴하지 않고 전투하며 증언하는 교회의 본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