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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나는 하나님

차라리 통곡 할지언정 (2012-12-05)

by kainos 2023. 2. 3.
 


  최근 치과의사가 환자를 폭행한 동영상이 포털 사이트를 달구었다. 그 사건의 숨은 진실을 알 길 없지만 한편으로 ‘젊은 치과의사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 ‘그래도 의사가 참았어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다. 어쩌다가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이미 의료는 인술이 아닐 뿐 아니라 상술이라 해도 저급한 상술이 돼버렸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이용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 하고 환자는 불신의 눈으로 언제든지 나를 괴롭히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전의에 불탄다. 이젠 환자의 입 안에 더 이상 안심하고 손을 넣기 두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A교수님은 국내 유방암 분야 최고 명의로 꼽힌다. 군의관 시절 외과, 내과, 치과 단 세 사람만 근무하는 의무실에서 그분을 실장님으로 모시고 함께 복무 한적이 있었다. 유머 있고 소탈하며 진실된 분이어서 군의관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그분이 복무를 마치고 대학병원에 들어간 이후로 간간이 연락은 하고 지냈지만 무얼 하며 지내시는지는 잘 몰랐다. 내가 군복무 기간 동안 연약한 신앙생활 이나마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독실한 신앙인인 그 분의 덕이었다. 소문에 그분은 유방암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월이 훌쩍 흐른 몇 년 전 어느 날, 일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분은 자기가 수술한 환자들이 멀리서 항암치료 받으러 와 머물 곳이 없어 근처 여관을 전전하는 것을 보고 본인이 명의로 대출받아 병원 앞에 아파트 전세를 얻어 환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새순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 그 병원 의사들이 돌아가며 방문하여 환자들을 살핀다고 했다. 이 쉼터에서 환자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투병생활의 애환을 이겨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과 함께 찜질 방에 함께 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시간을 보내고 상담도 해준다고 했다. 이러한 진정성이 환자들에게 전해져서 환자들 스스로 돈을 모아 새순의 집 2호, 3호가 오픈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 아는 집사님의 부인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그 분께 수술 예약을 했다. 이 일로 오랜 만에 통화하고 환자를 부탁하는 전화를 드렸다. 후속 조치와 관련해서 다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되지 않아 의국에 이러저러한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의국 비서가 말하기를 ‘교수님께서 환자분들이 이메일로 질문하시면 자세히 답해드리니 그렇게 하시라고 해주세요.’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환자들 중에 전도할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의 손길을 펴시고 복음을 전하는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의사의 일을 마치 목회처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이 형님의 스토리를 알게 된 뒤 ‘저 분은 목회하듯 진료하는데 나는 뭐하고 있나?’하는 자책감이 들어, 어떻게 하면 내 일도 상업이 아닌 사역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형의 ‘목회’는 나의 그것과 성격이 좀 달랐다. 그 형의 목회 대상은 생명의 벼랑 끝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붙잡고 위로하는 목회이지만 우리의 목회는, 일상의 삶을 영위하지만 불편과 고통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어서 성격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저에 흐르는 의료의 본질은 같다는 생각에 나를 찬찬히 돌아보게 되었다.

 
  예로부터 의사는 법률가와 성직자와 함께 전문인(professional)으로 따로 분류된다. 근래에 들어 전문인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전통적 전문직업은 다른 영역에 비해 판단의 독립성, 비밀 보장의 의무, 24시간 헌신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구별된다. 퇴근 후 넥타이를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해도 정신적 넥타이를 풀지 못하는 게 전문인이다. 의료는 따라서 기술의 진보에 도덕적 헌신이 결합함으로 발전해 왔다. 캐머런은 그의 저서에서 도덕적 의료를 세 마디의 말로 요약 정리하는데, 첫째는 (하나님, 스승, 환자와의 관계를 의미하는) 삼중의 계약, 둘째는 (환자의 생명을 해롭게 하지 않으며, 환자의 행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이중의 의무, 셋째는 (치료자라는) 유일한 역할이 그것이다. 이것을 풀어보면 의사의 직분이란 의사와 환자와의 수평적 관계와 하나님과 스승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 수행되어야 하되,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환자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고 나아가 환자의 심신을 치료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적 치료는 한 사람의 의사와 한 사람의 환자가 만나는 인간적 작업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허락 아래서 사람을 돌보는 사역이 된다. 따라서 의사는 의사 직 자체의 역할 뿐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환자에게 특별한 호소력을 가지며 이를 통해 환자의 심신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듯 환자는 의사가 갖는 권위의 원천이며 의사가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보상의 원천이고 나아가 의사의 발전과 학습, 이해, 지식을 쌓아가는 원천이 된다.

  따라서 환자의 입 속을 들여다 보며 핸드피스를 들기 전, 잠시 멈추고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환자와의 인격적 관계를 세워는 것이리라.
수필가 아나톨 브로야드가 전립선 암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쓴 글을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의사들이 내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단 5분이라도 내가 처한 상황에 심사 숙고해주고 한번이라도 그들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고, 잠시라도 그들과 내가 교감하고, 나의 신체적 어려움뿐 아니라 정신도 위로 받으며, 환자를 일률적으로 대하지 않고 나의 전립선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살펴 주기를 원한다. 이것이 없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뉴욕타임즈 Aug. 26. 1990.)

  치과 환자의 약 10%가 정신과 환자라는 통계가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더라도, 일부 환자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나아가 이 사회의 제도가 의사된 것을 후회스럽게 만들고 우리를 낙심시킬지라도 차라리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을 할지언정 환자에게 분을 내지 말고 참아야 한다. 우리는 의사이니까……
 




[참고문헌]

1. 니켈 캐머런. 기독교 의료윤리 -신의료 비판. 도서출판 횃불, 1993.
2. 에릭 카셀. 고통 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들녘, 2002.
3. 버나드 라운.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 몸과 마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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