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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신학

배우 안성기 추억

by kainos 2026. 1. 19.
본과에 막 올라간 1980년.
5·18에 이어 3개월이라는 긴 휴교령이 내려졌었죠.
휴교 기간 중단했던 수업 진도를
허겁지겁 따라가고 있던
그해 스산한 초겨울,
오래전 아역스타였던 한 배우가 영화에 데뷰해
촌놈 ‘덕배’를 연기하는데
가슴이 짠하고 공감된다는 입소문이 돌았습니다.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가장 바쁜 와중이었지만
아마도 명보극장이었던 것 같은데
달려가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초겨울 차가운 바람 맞으며 도서관으로 돌아와
시험공부를 하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80년대 강남 개발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상경한
그 어설픈 촌놈의 연기에
가슴이 시릴 만큼 공감했고,
나는 이 아역 배우 출신의 새 배우 이름을
새겨 두었습니다.
그 뒤로 본과 4년,
그리고 이어진 수련의 시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시간들 속에서도
그가 나오는 영화들을 찾아보았죠.
<고래사냥>, <무릎과 무릎 사이>, <깊고 푸른 밤>,
<외인구단>, <겨울 나그네>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보며
한 배우의 성장을 따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특수를 기대하며
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해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종전과 함께 졸지에 갈 곳을 잃고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는
배우 안성기.
그 역사의 아이러니 덕분에
그는 우리 시대의 기쁨과 슬픔을
가장 오래, 가장 묵묵히 함께해 준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할 일이네요.
그의 영면과 안식을 기원합니다.
덧붙여,
저와 같이 12사단 을지부대 출신이었다는 사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사뭇 애틋한 연결고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깊은 미소가 오래 그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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