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실화입니다.
그래서 읽다보면 더 화가나고 안타깝고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21세기 대명 천지에 최고문명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주인공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읽었습니다. 그녀는 86년생 삼십대 중반의 인생 황금기를 걷고 있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죠. 게다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석사, 하버드 대학 연구원, 다시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취득한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지성인입니다.
그녀의 자전적 스토리인 <배움의 발견 Educated>은 2018년 출간되자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으며 각종 언론의 베스트 셀러, 추천도서에 오르게 됩니다. 2019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죠.
그런 그가 열 여섯살까지는 공교육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고 심지어 출생등록도 제대로 되있지 않았으며, 현대 의학이라고는 예방주사를 포함하여 어떤 혜택도 받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몰몬교의 본거지인 유타주 북부에 인접한 아이다호주 산골 출신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몰몬교, 세대주의 종말론, 일루미나티 음모론 신봉자에 무식하고 고집스런 가장입니다.
언제 정부군이 침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산속에 벙커를 만들어 식량과 연료를 비축해두고 자녀들을 도시에 내보지지 않습니다. 폐차에서 철물을 수거하는 일로 수입을 삼지만 그 험한 일터에서 자녀들이 각종 사고를 당하여도 병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심하게 왜곡된 신앙심으로 그의 아내가 만들어내는 치료 오일을 바르기만 하면 만병이 다 낫는다고 생각하죠. 전장터 같은 일터에서 어떤 아들은 다리에 심한 화상을, 어떤 아들은 추락으로 뇌 손상을, 주인공 타라도 날카로운 금속에 자상을 입기까지 합니다.
그 암울한 시련 속에서도 일곱 자녀중 주인공을 포함한 세 사람은 배움의 갈망에 이끌려 독학으로 대처에 나가 문명 교육을 받아냅니다.
주인공 타라도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독학과 오빠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몰몬교도들의 대학인 브리검영 대학에 입학합니다. 학교 생활, 공동 생활이라고는 전혀 해본적 없는 그녀의 대학 생활은 문명 생활을 처음 접하는 '자연인' 분투기 입니다.
문제는 '교육'을 통해 문명화 되어가면서 부모와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이 이 어린 여성을 힘들게 합니다. 부모는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는 협박으로 그녀를 컨트롤하려 하고요.
그러나 주변의 천사같은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가게 되고 캐임브리지대학 교환학생에도 뽑혀가게 됩니다. 캐임브리지에서 만난 스타이그너 교수님은 그녀의 선지식이 전혀 없는 때묻지 않은 관점에 놀라게 되고 편견없이 그녀를 격려하면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줍니다.
그녀의 학업과 연구는 사실, 과거 부모로 부터 잘못 내려받은 세계관을 조금씩 허물고 다시 자기만의 세계관 프레임을 세워가는 인간 분투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환경과 과거를 원망하지 않고 경험을 승화시켜 자신의 연구 주제로 삼아내는 선택을 합니다. '역사를 쓰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는 그녀의 말처럼요.
이 책 정말 끙끙거리며 읽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모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씹게 되었습니다.
공교육과 현대의학을 사회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치부하고 자녀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아버지의 폭력적 그늘에서 한 여성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서서히 현실을 자각하며 인격의 주체로 서가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정신적인 쇼생트 탈출, 쇼생크에서 구속(redemption)받는 과정이라 느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신천지 사태가 오버랩되기도 하고, 뭐 꼭 사이비 종교까지 가지 않더라도 교회내의 문자주의적 근본주의, 세대주의적 종말론, 각종 음모론 신봉자들의 통제불능 열심이 오버랩되니 마음이 몹시 무거워집니다. 힘 닿는대로 계시록 바르게 읽기 모임을 해나가야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두어 문장이 가슴에 박힙니다.
'아버지의 죄와 내 죄의 무게를 견주는 것을 멈추고 내 결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등식에서 완전히 뺀 후에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내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는 것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그럴 만큼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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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섯의 소녀는 늘 거기 있었다. 그날(아버지와 갈등의 정점),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가 내리지 않은 것들이다.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이 문장들은 아버지를 극복해가는 치열한 고통처럼 보여서 안쓰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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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 웨스트오버의 남은 인생 항해가 평탄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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