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32

하늘, 현재 어휘 목록에서 하늘을 제거해보라. 당신의 환경은 일차원으로 축소되고 보이지 않는 수단의 도움이 사라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폴 미니어) 과거와 미래에 사는 것은 쉽다. 현재에 사는 것은 바늘에 실을 끼우는 것과 같다.(워커 퍼시) (유진 피터슨 묵시에서 재인용) 눈은 하늘을 향하고 발은 땅에 붙이고. 2020. 9. 30.
확신을 넘어 신뢰로 "전도서는 '네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무엇을 믿는지 알지 못할 때라도, 온 세상이 부조리할 때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한다." (피터 앤즈, 확신의 죄, 비아토르, 107쪽) "욥기는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내적 역사하심을 알 수 있다는 기대를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신뢰는 이성, 곧 우리 자아가 갈망하는 통제력에 도전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을 우리 머릿속에 가두어 놓기 때문에 신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신뢰는 마침내 우리가 알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작동한다." (같은 책, 119쪽) 버트 어만은 확신이 흔들리자 불신으로 돌아섰지만 피터 앤즈는 확신이 흔들리는 지점에서 신뢰를 선택했군요... 2020. 9. 18.
십자가와 보좌사이 요한계시록 관심자로서 모처럼 좋은 책을 또 만나 참 열심히 읽은 책이다.(매튜 에머슨저, 김광남옮김, 이레서원.)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에서 느꼈던 고마움을 이 책을 만나면서 다시 느낀다. 이 책의 강점은 교회에서 또는 선교단체나 각종 모임에서 요한계시록 그룹 바이블 스터디의 교재로 사용하기 최적화된 책이다. 두께도 120페이지의 소책자 일 뿐 아니라, 8장 각 장마다 읽어 볼 본문과 생각해볼 질문들을 주어서 나눔과 토론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친절함도 있다. 얇고 축약된 책이라는 면에서 강점을 지닌대신 계시록의 전체 플롯과 큰 그림을 이해하게 해주는 안내 장치가 부족하다는 면에서 약점이 있다.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시리즈 인 점을 감안하면 편집 방향이 신학적 논쟁보다는 바이블 .. 2020. 9. 17.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김준엽(뇌성마비시인)>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 그러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 .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어보겠지요. . 그러면 그때 자신 있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 하여 살아가겠습니다. . .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 그러면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 .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삶이 아름다.. 2020. 9. 14.
일과 신앙이 하나되는 생활14 - 맺음 말 맺음 말 종말론적 일터 신앙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성공을 통한 나의 성공입니다. 내 삶 속에서 빚어가고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통해 주변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줌으로 결과적인 나의 성공을 이루는 일종의 간접적인 성공 방식(indirect success)입니다. 사실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은 지극히 수고스런 일입니다. 데살로니가저서 1장 4-5절에는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영안교수는 그의 책 「믿는다는 것」에서 믿음의 결과는 ‘역사’(일)이고, 소망의 결과가 ‘인내’이며, 사랑의 결과가 ‘수고’이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현재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향해 그의 .. 2020. 9. 6.
일과 신앙이 하나되는 생활 13 - III. 어떤 생각이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까 (2.종말론적 삶의 방식) 셋째, 변화된 삶의 경계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요. 이러한 종말적 삶의 방식은 어느 정도 손해와 양보를 동반합니다. 따라서 어디까지 언제까지 참거나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가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인간의 타락이후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로 형제간에 시기와 다툼이 일고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가 어디있냐’는 질문에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따집니다. 가인처럼 책임에 경계를 긋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의 일차적 본성입니다. 이러한 불만을 예견이라도 한 듯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어느 율법사가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 질문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냐는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답을 주지 않으시고 무엇이라 기록.. 2020. 9. 6.
일과 신앙이 하나되는 생활 12 - III. 어떤 생각이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까?(2.종말론적 삶의 방식) 2. 종말론적 삶의 방식 이러한 사고 방식의 변화는 필히 내면의 변화로 이어지는데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며,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첫째, 변화의 시작은 아무래도 관점의 변화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보기에 미래에 가장 좋을 것 같은 선택을 합니다. 시공간의 좌표축에서 지금 여기라는 지점에서 미래의 특정 시점 특정 장소에 좋은 모습으로 도달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길을 선택하죠. 즉 지금 여기가 중심이되고 미래의 그곳을 내다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죠. 그러나 관점을 역으로 바꿔 봅시다. 먼저 내가 꿈꾸며 기대하는 미래의 어느 가장 이상적인 시점과 장소를 그려봅니다. 그 지점으로 옮겨가서 그쪽의 관점으로 오늘 여기에서 어떤.. 2020. 9. 6.
일과 신앙이 하나되는 생활 11 - III. 어떤 생각이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까?(1.종말론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질문3). 종말은 이미인가 아직인가? 종말이 언제 임할까요. 종말의 시기에 대해 크게 세 관점이 있습니다. 먼저 종말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어서 이 땅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은 종말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를 미래적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종말은 이미 왔고 완성되었기 때문에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완성된 종말론이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셋째로 종말은 예수님의 초림때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시고 훗날 재림으로 완성된다는 개시된 종말론의 관점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학은 세번째 관점을 지지합니다. 흔히 이미 왔지만 아직은 아님(alreadty but not yet)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 2020. 9. 6.
일과 신앙이 하나되는 생활 10- III. 어떤 생각이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까?(1.종말론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1. 종말론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질문1). 종말은 포맷팅인가 업그레드인가?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죽음 이후에 부활의 삶이 있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삶은 현재의 삶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전혀 연속성이 없을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흔히 우리가 죽고나서 부활하면 부모 형제 간에 서로 알아볼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이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이후에 행하신 일들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를 몰라보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알아보시며 대화도 하시고 궁금해하는 것도 답해주시고 심지어 제자들을 위해 생선도 굽고 식사를 차.. 2020.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