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30 하나님의 초대 (2012-11-05) 1990년 3월경 제대를 앞두고 개원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무렵, 공직에 뜻이 있었지만 마땅히 오라는 곳도 없어 마지못해 개원을 준비하는 터라 썩 내키지 않았었다. 모아둔 돈이 없으니 다른 이들이 자리 잡았다는 곳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적은 돈으로 개업할 수 있는 자리를 찾던 중 영등포 인근의 허름한 공장 밀집 지역에 치과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중개인과 함께 갔다. 60대로 보이는 원장님을 만나고 이야기가 잘되어 계약금으로 400만원을 전하고 왔다. 몇 일 후 정해진 날에 중도금을 어찌어찌 마련해서 치과로 찾아갔다. 그런데 치과는 문이 닫혔고 약속했던 원장님을 만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더니 이 분이 3중 계약을 한 뒤 나 외에도 다른 사람의 인수금을 받고 사라졌다는 것.. 2023. 2. 3. 스프링복의 비극과 기적 (2012-10-04) 남아공의 상징동물이고 남아공 국가대표 럭비 팀의 마스코트인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점프를 잘하고, 번식률이 높은 초식 동물로 무리 지어 다닙니다. 먹을 풀이 많을 땐 별일 없는데 풀이 부족해지면 무리의 앞에 있는 동물들이 풀을 먼저 먹어 치우니까 뒤에 있는 무리들이 조금씩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후미에 있는 무리들은 더 속도를 내게 되고 점차 풀을 먹는 것은 잊어버리고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가 됩니다. 이 생각 없는 동물은 그냥 무작정 달리어 도저히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낭떠러지를 만나 몰살할 때까지 달리게 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사진-스프링복(springbok) 지금 치과 계의 현실이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조급해진 일부 치과의사들이 .. 2023. 2. 3.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2012-09-04) IMF 외환 위기로 나라 안이 뒤숭숭하던 시절, 여파가 나에게까지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건물주였던 중견 제약회사는 레저산업에 투자했다가 부도를 내고 건물은 경매 처분되었다. 그 틈을 타 한 재미교포가 헐값에 건물을 인수하였지만 비상식적인 건물 관리로 세입자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급기야 단수 단전사태에 이르도록 일을 악화시켰다. 여러 가지 불안한 일들이 벌어지자 병원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물을 알아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나마 남아있던 옆 건물에도 치과가 들어와 도대체 옮길만한 곳은 없고, 이 건물에서는 권리금은 고사하고 보증금도 받지 못할 것 같은 난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내 신뢰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2023. 2. 3. 신뢰와 사랑의 호르몬 (2012-07-04) 클레어먼트 대학 신경경제학센터(Center for Neuroeconomics Studies)책임자인 폴 잭(Paul Zak)은 무엇이 사람을 도덕적이며 관대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 두뇌활동을 연구하며 사람의 도덕성이 어떻게 상황에 대한 이기적 인식을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한다. 그의 연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우선적으로 반응한다는 통념에 도전하며 사람간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옥시토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다. 그의 연구는 경제학 역사상 가장 시사점이 큰 연구로 주목 받게 된다. 옥시토신은 포유류의 두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 호르몬으로 출산 시 자궁수축과 모유수유에 관여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 2023. 2. 3. 무엇을 심을까 (2012-06-04) 내 친구 모 종합병원 치과 과장인 그가 수년 전 여의도에서 주일 오후 혼자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강변을 걷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다가가 보니 어떤 어린아이가 물에 빠졌고 주변에 많은 사람이 “어! 어!”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답니다. 이 친구 바닷가 출신이지만 샌님인지라 수영을 어설프게 하는 정도였는데 아이가 한 번, 두 번 물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세 번째 꼬르륵 가라앉는데 그 짧은 시간에 정말 허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더랍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내일 신문에 뭐라 나올까?' 하는 생각까지…… 그 짧고도 긴 망설임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물로 뛰어들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그 아이를 건져냈다고 합니다. 그 친구 하는 말이 '내가 만약 그 아이가 죽어 건져 올려.. 2023. 2. 3. 관계를 통한 사랑만 남는다. (2012-05-04) 안양할머니, 우리 스태프들에게는 욕쟁이 할머니라는 별명이 더 친숙한 분이시다. 우리 치과를 출입하신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처음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게 있어 걸쭉한 욕설로 말문을 여시면 나와 우리 스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었다. 그 욕설이 점차 익숙해지고 당신을 어설피 대하면 원장 볼기를 때려주겠다는 협박이 친근해지기 시작해졌다. 처음 해 드린 부분틀니를 10년쯤 사용한 뒤 남은 치아들을 발치하고 완전틀니를 하게 될 즈음이 되어서야 기세등등하던 욕설도 점차 줄어들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봄날 안양할머니는 손수 딴 봄나물로 갖가지 반찬과 찰밥, 그리고 쑥떡을 해오셨는데 마침 그날 따라 우리 치과는 문을 닫고 휴무였다. 먼 길을 오셨는데 병.. 2023. 2. 3. Integrity (2012-04-04) 몇 년 전 아직 치과보험이 널리 퍼지기 전의 일이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중년의 비즈니스맨을 치료해드리며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겼다. 그는 구치부에 두 개의 임플란트가 필요한 상태였으나 미루다가 치료 받기를 결심하였다. 치료계획을 설명 듣고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냐고 묻자 머뭇거리더니 자신이 가입한 치아보험이 인공뼈 시술을 전제로 보장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게 필요한지 여부와 필요 없더라도 시술했다고 진단서를 작성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어느 정도 아는 사이에 어렵게 부탁한 것을 들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미국치과의사면허 시험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치과의료윤리 시험 문제가 생각나 자료를 다시 뒤적이며 이러한 윤리적 이슈들을 미리 경험하고 정리해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였다. 그들은 이를 ‘제.. 2023. 2. 3. 그릇을 닦으며 (2012-02-29) 그릇을 닦으며 어머니, 뚝배기의 속끓임을 닦는 것이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곡차곡 그릇을 포개 놓다가 보았어요, 물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주셔요.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윤미라님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공부 중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불교시인 난포 윤미라님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윤미라님의 '그릇을 닦으며'라는 시를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설거지할 때 된장 뚝배기 같은 그릇 내면에 묻어 있는 속끓임을 닦는 것이 물론 힘들고 잘 닦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것보.. 2023. 2. 3. 내 안의 PAUSE 버튼 (2012-02-06) 오래전 심리학 교수님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치료가 다 끝나자 "무의식적으로 치료하시죠?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시죠?"라고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본인의 전공에 충실하게 진료하는 나를 분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 사람의 마음속은 안정되고 평안함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즉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의 연속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단다. 의사이며 목사인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의사들과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교에서 의사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로 만물을 상대화시키려는 경향을 지적한다. 상대화란 끊임없이 가해지는 외부의 공격에 대해 자신의 감수성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막 같은 것으로 모든 일에 감정을 제거하고 .. 2023. 2. 3. 이전 1 2 3 4 5 ··· 26 다음